"병사 70명 당 위안부 1명 필요"…日 공문서로 입증된 ‘위안부 강제동원’

日 전문가 "군이 만들고 유지했다는 증거…책임 인정하고 피해자에 사과해야"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정부에 병사 70명당 한 명의 위안부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외무성 문서가 발굴됐다.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내각관방장관이 2017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추가로 수집한 일 정부 문서 23건을 분석한 결과 13건에서 일제가 정부 차원에서 군 위안부를 동원했음을 짐작케하는 내용이 기술돼 있었다고 6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1938년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주재 일본 총영사는 본국 외무상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풍속업 종사 여성의 증가를 야기했다”며 “101명은 본국(일본)에서 온 게이샤이며 110명은 본국 출신 작부, 228명은 조선 출신 작부”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4월말까지 최소 500명의 위안부 여성이 집결해 있다”며 “(중국 장쑤성) 쉬저우(徐州) 점령 후에는 186명의 여성이 남부로 가는 군용차에 탑승해 있었다”고 덧붙였다. 

 

산둥성 칭다오(靑島) 주재 일본 총영사는 같은 해 외무성에 보낸 보고서에서 “육군은 병사 70명 당 1명의 (위안부) 여성을, 해군은 위안부 여성과 게이샤 150명 이상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신은 이번 문건들이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고, 대부분은 피해자들 의지에 반한 것들이라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가쿠인(關東學院)대 교수(현대사)는 “군이 주체적·계획적으로 여성을 모으려고 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라며 “영사관을 통해 외무성에 타진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에 천착해 온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명예교수는 “그간 ‘성병 예방을 위해 병사 100명에 1명의 비율로 위안대(隊)를 수입한다. 1400∼1600명’이라는 육군 군의관의 업무일지가 있었으나 ‘70명에 1명’이라는 공문서는 그보다 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는 “고노 담화에서는 ‘군의 관여’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위안부 제도를 군이 만들고 유지하고 운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라며 “(일본) 정부는 ‘군이 주체적으로 실시했다’는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고 새롭게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교육 등 재발 방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