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의 ‘경제발전 5단계설’이 보여주듯 후진국을 열심히 도와 중진국으로 만들고 선진국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종말 이후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비슷한 철학으로 서양의 민주시장경제가 21세기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 모두 사실과 먼 학설이 돼 버렸다. 후진국은 대부분 후진국으로 남아 있고, 중진국도 발전할 수 없고, 선진국도 덫에 빠지게 됐기 때문이다.
후진국이 노동집약적인 경제성장에 성공해 국민소득이 1만달러 정도 되면 소위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중남미 등 이러한 경험을 한 나라가 많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려면 몇 가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고등교육, 제3차 산업투자, 기간산업성장, 토지개혁, 노동시장과 소득분배 구조개선 등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에는 문명적 배경이 필요하다. 서방을 제외하고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 유교문화권뿐이다. 자동차, 선박, 컴퓨터,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스포츠 등 분야에서 동·서양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동양이 앞서는 분야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간직하고 키워온 동양문명 덕분이다.
중진국 함정을 겨우 벗어난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바로 ‘선진국 함정’이다. 미국이 주도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럽이 주도한 2010년의 유로 위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서양문명의 문제다. 곳곳에서 서양문명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입각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도,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에서 30대 초반의 극우파 총리 등장이다. 이러한 현상이 선진국 함정의 증표로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자유, 평등, 정의라는 이념보다는 자국의 이익부터 우선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이 한 말에서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유로 위기에 봉착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할 경우 어떻게 재선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것이 문제다.” 서양식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직격탄이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