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작은 과학관 건립… 과학 꿈나무 키울 것” [나의 삶 나의 길]

4선 의원 지낸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 / 고교 2학년 때 몸 아파 3년간 휴학 / 검정고시 수석 합격 하고 약대 진학 / 제약회사 15년간 다니며 승승장구 / 천연자원 없는 만큼 인재양성 중요 / 정치판 들어와 과학기술 발전 주력 / 34년간 녹색삶 지식원 이끌고 있어 / 영남 출신이지만 호남 사랑 남달라 / 광주 명예시민… 총선 출마권유 받기도 / YS때 광주과학기술원 설립 큰 기여 / 술·담배 않고 모래주머니 차고다녀 / 내 것 양보하고 내려놔야 사람 모여 / 서초동 땅 기부 동의한 아내 고마워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녹색삶 지식원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생활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개인이나 국가가 실리를 챙기려면 아양이 필요하다”며 “상대를 기분 좋게 하며 그 사람과 내가 윈윈을 하려면 아양을 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이상희(81)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삶 자체는 ‘과학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력에 과학기술이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다. 약대 졸업 후 제약회사에 몸담았던 그는 4선 국회의원을 하며 과학기술처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장관급),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하는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활동을 했다. 정계를 떠난 후에도 과학기술을 위해 심혈을 쏟고 있다.

현재 녹색삶 지식원 이사장인 이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과학은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이며 절대파이를 키우는 창조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기술은 과학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는 늘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유머를 잊지 않는 등 즐겁고 여유롭다. 이 전 장관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며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친구, 이웃, 국가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사랑론’을 역설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그는 요즘도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신문을 본다.

광주 명예시민인 이 전 장관은 한때 광주에서 국회의원 총선 출마권유를 받을 정도로 광주사랑이 남다르다.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솔선수범을 했다. 김영삼정부 때 설립된 광주과학기술원은 100% 그의 아이디어와 정책 발의로 설립됐고, 의원시절엔 호남출신 인사를 보좌관으로 채용했다.

이 전 장관은 당초 서울대 공대 화공학과를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부산고 2학년 때 제대로 먹지 못하며 공부하느라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아 3년간 휴학을 했다. 이때 그의 인생항로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완치 후 고등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대입검정고시에 수석합격한 이 전 장관은 생각을 바꿔 서울대 약대를 진학했다. 문화공보부 장관, 9대 국회의원, MBC문화방송·경향신문 사장 등을 지낸 이진희씨는 그의 친형이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녹색삶지식원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났다.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녹색삶 지식원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생활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개인이나 국가가 실리를 챙기려면 아양이 필요하다”며 “상대를 기분 좋게 하며 그 사람과 내가 윈윈을 하려면 아양을 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녹색삶지식원을 34년간 이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 졸업 후 동아제약에 입사해 15년간 연구개발을 담당하며 초고속 승진했다. 입사동기들이 과장할 때 중역이 됐다.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 없었는데 코가 꿰어 잡혀 들어왔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명이며 팔자라고 생각한다. 정치판에 들어와서 이 나라에 과학기술을 창달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겨 1985년 녹색삶지식원을 설립했다. 천연자원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력자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녹색삶지식원은 이러닝(e-learning) 산업발전법, 영재교육진흥법,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 Y2K특별법, 가상교육법, 뇌연구촉진법, 해양개발기본법,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 유전공학육성법, 전자정부 구현 및 운영에 관한 법, 과학기술산업화 촉진지구의 지정 및 지원 등에 관한 법, 생명공학 육성법 외 다수의 창조적 법률안 제정에 전념했다.”

―과학과 정치를 비교하면.

“과학은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이며 절대파이를 키우는 창조적 영역이다. 기술은 과학의 산물이다. 반면 정치는 과거지향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갈등적이다. 요즘 정치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하지 않고 조선 말 정치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을 위해 일을 하지 않고 노상 싸움질만 한다. 최근 정부 부처 모장관과 식사를 하며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가 산다.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자율성이 있어야 창의성이 살아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은 정부의 간섭이 필요 없다. 정부가 왜 근무시간(주 52시간), 월급(최저임금)을 묶느냐’고 충고한 적이 있다. 정부가 방탄소년단(BTS), 여자프로골프 선수, K팝 스타들을 간섭했으면 그들은 세계 최고가 안 됐을 것이다.”

―일화를 소개해달라.

“김대중(DJ) 대통령이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후 청와대 부근 안가에서 나를 불러 대통령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면 내 명에 못 살 것 같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중히 고사했다.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DJ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김영삼정부에서 장관급인 과학기술자문위원장을 할 때다. 당시 청와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해 현안 보고를 했다. 그때 1992년에 실시된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DJ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가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관해 비공개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배석자 없이 안방에서 DJ에게 보고를 한 후 저녁까지 먹었다. 식사 때는 이희호 여사도 함께 자리를 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청와대에서는 발칵 뒤집혀졌다. 대통령 정무수석이 나에게 ‘DJ에게 왜 보고를 했느냐’고 크게 화를 내며 따졌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DJ는 야당의 정신적인 지주다. 지금 그분의 정치적인 사고를 과학으로 바꿀 좋은 기회가 아닌가’라고 오히려 면박을 줬다. 과학기술자문위원장을 그만둘 각오까지 했다. 이를 안 DJ는 내게 무척 고맙게 생각한 것 같았다. 또 김대중정부 시절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하며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에 참석했다. DJ는 그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이 회의에 참석했다’며 공개적으로 치하한 일이 기억난다. 그때 야당의 당직자는 청와대에서 열리는 회의에 불참했다.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을 하며 한국발명진흥회장을 맡았다. 그동안 ‘발명의 날’ 기념행사는 특허청장 주재로 개최했는데 내가 한국발명진흥회장을 할 때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이 특별히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행사 참석 후 나를 불러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말해 강남 테헤란로에 한국발명진흥회관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뜻을 이뤘다. 300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로부터 러닝메이트하자는 제의가 있었다.”

―정치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치는 예술이다. 예술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반면 정치는 피로를 주는 등 소음이 되고 있다. 또 생물의 기본원칙은 다윈의 ‘종의 기원’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종의 기원 이론의 핵심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이 적자생존이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이 아니다. 대미, 대일, 대중 관계에서 외교로 아양을 떨어 실리를 챙겨야 한다.”

―장관, 4선 의원 출신으로 국립과천과학관장을 맡아 당시 주변을 놀라게 했다.

“공무원은 영어로 civil servant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civil dictator로 지배자, 관리자라는 의미다. 공무원은 국민을 모셔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국민 위에 군림을 한다. 공무원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역사적, 국가적, 국민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과학계와 국회 보좌진들이 내가 관장을 맡아야 한다고 탄원을 해 국립과천과학관장을 맡았지만 공무원 노조가 반대했다. 아내에게 ‘일흔 넘어 월급을 받아서 뭐하겠느냐’며 양해를 구하고 월급 전액을 노조원 자녀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학원에서 재수생을 상대로 강의한 적이 있다. 당시를 설명하면.

“장관을 그만두고 학원에서 재수생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처음엔 수강생들이 장관, 국회의원 경력을 의식해서인지 교단에 선 나를 거들떠보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도 자기 자랑하러 온 것으로 착각한 듯했다. 그래서 분위기 전환을 해야 되겠다 싶어 ‘여러분 내가 몇 수생 같아 보이느냐’고 대뜸 물었더니 숙였던 고개를 들며 다소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라.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더니 고등학교 동기들은 대학 졸업반이었다. 그러면 몇 수지’라고 물었더니 일제히 ‘사수요’라고 답변했다. 그때부터 재수생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과거 고등학교 시절 몸이 아파 3년 동안 고생하며 휴학한 일을 말하며 여러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계절이지만 나한테는 그때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의 계절이었다. 그때 ‘이렇게 살아서 뭐 하느냐’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은 칠흑 같은 어둠이 있어야 밝은 날이 오더라. 병 치료 후 대입검정고시 수석합격, 변리사 시험에서 수석합격 하는 등 승승장구한 내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랬더니 재수생들이 열광하더라. 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인사 가운데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의정 지낸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두세 번 떨어진 경험이 있더라. 여러분도 장차 국무총리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무척 좋아하더라.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좋아 4군데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좌우명이 있다면.

“살면서 ‘3인(忍,仁,引)’을 생각한다. 첫째, 나 자신이 참아야 한다. 참을 인(忍)자는 내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질어야(仁) 한다. 2명이 있는데 내가 2등을 하면 어진 사람이 된다. 셋째, 스스로 참고 어질면 주변에서 끌어당긴다(引)는 뜻이다. 내 것을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사람이 모인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동아제약을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으로 서울 서초동 등에 땅 두 곳을 샀다. 한 곳은 2002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 때 팔아 선거비용으로 썼다. 당시 경선 기탁금이 2억원이었다. ‘과학 대통령’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 경선후보 선거에 뛰어든 것은 토론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소신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이회창, 최병렬, 이부영 후보와 경쟁을 했다. 남은 땅은 기부할 생각이다. 서초구청과 협의해 학생들이 이용할 사립과학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유대인들은 방과후 동네 작은 과학관에서 자기네끼리 자유롭게 토론을 한다. 우리는 그런 장소가 없다. 서초동에 사립과학관 설립 후 전국 곳곳에 사립과학관을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발상을 하려면 사립과학관이 필요하다. 선거 때 서초동 땅을 판 데 이어 남은 땅마저 서초구 사립과학관 건립 기부에 흔쾌히 동의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이상희 전 장관은…  ●경북 청도 출생(1938) ●서울대 약대 졸, 서울대 약학박사, 변리사, 기술거래사, 중국 한의사 ●과학기술처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장관급) 역임 ●제11, 12, 15, 16대 국회의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역임 ●지식재산포럼 공동대표, 한국과학기술 총연합회 고문, 대한변리사회 회장,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한국우주소년단 총재, 세계사회체육연맹(TAFISA) 회장, 아세아·오세아니아 사회체육연맹(ASFAA) 회장 등 역임 ●현재 (사)녹색삶 지식원 이사장, 한국BI기술사업화협회 회장, 대한민국 헌정회 국가과학기술 헌정자문회의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