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동굴 도시 마테라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척박한 환경 때문이었다. 도시의 처음은 이슬람 세력의 박해를 피해 온 수도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버려진 땅에 정착해 주변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가난한 노동자나 땅이 없는 소작농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가파른 협곡에 터전을 일구고 동굴을 파서 마을을 형성하는 고단한 과정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가난하고 힘든 삶이었을 지라도 박해와 착취가 없는 생활이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고단한 삶의 과정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지금 모습이 오히려 훌륭한 관광지가 되었다는 것 또한 아이로니컬하다.
하루를 일깨우는 새소리에 커튼을 열어보니 태양이 계곡 저편에서 서서히 차오른다. 소박한 동굴 호텔 창가에 햇살이 깃든다.
이른 아침, 마테라를 출발해 주변 지역들의 무너진 교회들과 신석기 마을, 그리고 많은 선사시대 무덤들의 땅이었던 장소를 지나 알베로벨로(Alberobello)로 향한다. 이 지역 전통가옥인 ‘트롤리’는 아름다움과 독특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석회암 지대인 이 지역에서 트롤로(Trullo)라는 석회암을 쌓아올린 가옥 형태는 이탈리아 민속 건축의 독특함을 알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본보기이다. 흰색 벽과 유명한 원뿔모양의 지붕으로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밖 풍경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주차장이다.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이 모여 있다. 그들을 따라 이르니 독특한 구조물들 집들이 나란히 서 있는 작은 골목길이다. 구 또는 반구 모양으로 이루어진 회색 원뿔모양 지붕을 얹은 낮은 건축물이 빼곡하게 서 있다. 좌우 좁은 골목길마다 이런 집들이다. 한 개의 방마다 한 개의 지붕을 올리고 이런 방이 모여 한 채의 트롤리를 이룬다고 한다.
처음에는 악천후 날씨로부터 몸을 피하거나 생활도구들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단다. 점차 주거지로 발전하여 지금은 골목길 주거지와 선물가게들로 얽혀 있다. 하얀 벽과 회색지붕, 장식되어 있는 정원 화분과 꽃들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아낸다. 가게 앞에 장식되어 있는 지중해 소품들이 더해진 분위기는 관광객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상품을 구경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내를 둘러보게 된다. 석회로 하얗게 칠해져 있는 바깥에서 들어선 실내는 돌로 만든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두꺼운 벽은 2중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은 흙, 자갈 등으로 메워져 있다고 한다. 안쪽 벽에는 수납용 함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에는 돌이 깔려 있다. 방과 방은 복도 없이 곧바로 이어진다. 내부는 서로 다른 목적의 다양한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집마다 이런 공간이 다양한 숫자로 나뉘어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하니 주거지로서도 훌륭하다.
길을 따라 언덕 끝에 오르니 지붕 꼭대기에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징물이 보인다. 쿠쿠르네오 또는 틴티누레라고 하는 둥근쟁반 모양이나 공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어떤 지붕은 별·태양·달·촛대 등의 무늬가 보인다. 트롤리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건축기술이 현대까지 이어진 훌륭한 예라고 한다. 그 오랜 기술의 역사가 놀라울 따름이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