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일가족 비극 더 이상 없어야

부모, 자녀의 생사 결정 안돼 / 가족 가치 높이는 복지 필요

유난히 참사와 재해가 많았고 국가 간, 세력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9년을 훌훌 떠나보내며 희망과 화합으로 가득한 2020년을 기대하는 성탄 전야에 벌어진 대구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먹먹하게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2020년 현금지원 복지예산이 54조원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최근 6개월간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가족단위의 사망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이 생각보다 더욱 깊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가족은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이자 문화현상이며 개개인의 삶의 원천이 되는 혈연공동체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족에게 서로 의지하고 공감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통해 변치 않고 전해 내려오는 근본 가치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가족단위의 비극은 부모가 사회 공동체나 공적 제도의 지원을 통해 가족의 삶이 앞으로 개선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내린 잘못된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즉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하는 복지정책의 불완전성과 자녀를 존중받아야 할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가 결합되어 나타난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이러한 가족단위의 사망은 일면 부모의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의 삶을 결정해버리는 부모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동학대처벌법과 같은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나 부모의 그릇된 생각을 막을 수 있는 직접적 조치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회적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족가치를 되살리는 복지가 시행되어야 한다. 취약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 상담이나 심리치료, 가족의 가치를 고양하는 공동체 프로그램 참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생활의 곤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가족에게서 나옴을 공감하게 하는 포용적 복지제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시점이다.



물론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생활고와 결합된다고 해서 언제나 비극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생활고에 빠진 가정과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다. 올해 9월 5일 발표된 ‘복지 위기가구 발굴대책 보완조치’에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으로 대통령 공약도 미처 실천하지 못하는 보완대책을 내 놓았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신청과 자료검색을 기반으로 고위험군을 선발해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렇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상 맞춤형 복지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결합된 경제 양극화 현상으로 복지대상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편적 현금복지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면 가족단위의 포용적 복지수요를 고려해 보았을 때 꾸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복지정책의 방향이 분산되고 행정의 낭비를 가져오지 않도록 대상에 부합하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복지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가족단위의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한 현금지원을 넘어 가족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관심과 참여를 통한 복지제도와 동시에 만인을 위한 복지보다는 복지 수요계층의 특성에 맞게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시행될 필요가 있다. 복지의 대상을 개인이 아닌 가족과 가구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사회의 관심과 배려를 포괄하는 지원이 이루어질 때 일가족 비극은 사라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