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정부 당시 체결됐던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헌법소원이 부적법하다고 27일 ‘헌법소원 대상에 해당 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15년 12월28일 체결됐던 한·일위안부합의 4주년을 하루 앞두고 나온 판단이며 헌법소원 3년 9개월 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27일 오후 위안부 피해자 29명과 가족 12명이 ‘한·일위안부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의 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여기에서 각하는 청구 자체에 ‘이유가 없다’고 배척하며 기각하는 법률 용어다. 각하 이유에 대해 헌재는 “조약과 비구속적 합의의 구분은 형식적 측면 외에도 실체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라며 “비구속적 합의의 경우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제법의 모태로 불리는 1969년 비엔나 조약법협약상의 조약의 정의에선 국가 간의 문서로 된 모든 명시적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정의한다. 비구속적 합의는 국가적 규율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하여 조약에 비하여 신속하고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인데, 보통 합의의 본문에 명시될 경우 드러나지만, 비구속적 합의와 조약은 당사국 의사에 상당 부분 결정된다. 헌재는 조약과 비구속적 합의를 구분, 해당 내용이 청구인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헌재는 해당 합의가 피해자들이 정부에 기본권 등 법적 권리를 구체적으로 해할 만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점을 짚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내용에 대해 “절차와 형식 및 실질에 있어서 구체적 권리·의무의 창설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 권한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심판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숨진 청구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청구인들의 심판 청구를 각하한다”고 결정했다.
앞서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은 일본 정부가 사죄를 표명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약 10억엔(약 107억원·2015년 환율 기준 97억원)을 출연한다면서도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문구 등이 포함됐다. 이 같은 문구는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삽입된 것으로 양국 간 합의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며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의 거센 반대에도 이 합의에 기반해 위안부 재단을 설립했고 2016년 7월 28일 여성가족부 소관 재단법인으로 ‘화해·치유재단’을 발족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듬해 3월 “정부가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합의해 이들의 재산권과 알 권리,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2015년 합의로 인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고 이로써 기본권을 침범당했다는 취지에서였다.
합의의 주무부처였던 외교부 또한 위안부 합의의 절차 및 내용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헌법소원 대상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6월 외교부는 헌재에 심판 청구를 각하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당시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가 법적 효력을 지니는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며 헌재 판결문과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헌재 판단은 2011년 헌재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부작위)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두 번째 결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월 피해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합의는 진정한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니라고 전제한 후 공식합의임을 고려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파기를 선언했다. 그해 9월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통보했으며 11월 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