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7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헌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해당 위안부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에 그치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 등 법적 권한이 침해받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통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27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2016년 3월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3년9개월 만이다.
이날 헌재는 각하 이유에 대해 “해당 합의는 정치적 합의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는 외교부가 지난해 6월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헌재는 이어 “그로 인해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되거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로 판단한 이유로 ▲합의가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 ▲조약의 조문 형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점 ▲헌법이 규정한 조약 체결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헌재는 또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온통 추상적·선언적 내용뿐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시기·방법, 불이행의 책임 등을 정한 바 없다는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 개인의 배상청구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2016년 12월28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30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에 대한 첫 공판이 지난달 13일 열리기도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가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내용을 말한다.
기자회견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내각총리가 사죄를 표명했다. 또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정부가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하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들은 2016년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합의로 인해 피해자가 일본에 대해 가지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실현에 장애가 발생해 헌법상 재산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외교부는 지난해 6월 “위안부 합의가 법적 효력을 지니는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라며 심판 청구를 각하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한편 이번 헌재 판결로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 경제적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정부는 큰 마찰을 피하게 됐다.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민변 이동준(사진) 변호사는 이날 헌재의 각하 결정 뒤 “(위안부 합의가)결국 공식적인 협상이나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합의의 성격, 효력 등을 감안해서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한 게 아닌가 한다”고 논평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파기를 선언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선 그으면서도, 헌재 결정과는 관계없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