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與 공수처장’ 뻔한데… 입맛대로 수사 ‘정권의 칼’ 우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놓고 갈렸던 정치권이 공수처장 임명을 놓고 다시 한 번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장 성향에 따라 조직이 자칫 ‘고위공직자 비리 수비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 설치법안은 정부로 이송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공포된다. 공수처법 부칙 조항에 공포 후 6개월 이후 시행한다는 내용이 있는 만큼 이르면 내년 7월 공수처가 설치될 전망이다.
공수처 설치 준비 작업은 별도의 준비위원회에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할 당시에도 별도 위원회가 설치 작업을 맡았다. 준비위가 꾸려지지 않을 경우 법무부가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을 포함한 25명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경력 15년 이상의 법조인 2명을 선택하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구조다.
법조계에서는 결국 추천위원 구성을 보면 여당성향의 처장이 임명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7명의 추천위원은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여당 추천위원 2명 △그 외 교섭단체(야당) 추천위원 2명이다. 법무부 장관의 임명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대법관 중 한 명이 맡는 법원행정처장 역시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법무부 장관 등 10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법무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 제출을 국회에 요구한 상태다. 추 후보자는 여당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그 외 교섭단체의 경우 자유한국당과 다른 야당 인사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는 여권 성향이 인물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추천위가 2명을 추천해도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하기 때문에 나머지 1명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공수처장이 사건수사를 보고받아 비리를 덮고 권력을 방어해 주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장 선발방식과 함께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중앙부처 공직자는 “검찰 위의 검찰이 탄생했다”며 “피의사실을 유출한 검사와 언론인도 강제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검찰의 권력화 견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수처가 검사들이 수사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검찰이 독점하고 있던 기소권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검사 25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거대 권력기관이 될 우려는 크지 않다”며 “공수처의 비리가 발견되면 검찰이 수사하면서 서로 견제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신년사를 통해 공수처법 통과와 강력한 검찰개혁에 대한 첫 반응을 내놨다. 공수처 법안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윤 총장은 “형사사법 관련 법률의 제·개정으로 앞으로 형사절차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부정부패와 민생범죄에 대한 국가의 대응역량이 약화되는 일이 없도록 국민의 검찰로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또 내년 총선과 관련해 “누구도 돈이나 권력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왜곡하는 반칙과 불법을 저지른다면 철저히 수사하여 엄정대응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수처발 한파에 국회 올스톱 위기… 총리 인준·민생법안 처리 지연될 듯
자유한국당이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협의체’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강행 처리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남은 20대 국회가 표류 위기에 처했다. 한국당은 전날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꺼내든 데 이어 31일 고강도 장외투쟁을 포함해 본격적인 대여 전면전을 예고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경색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민생입법 처리도 기약 없이 미뤄질 우려도 나온다.
한국당은 장외집회를 통한 대여 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지지부진한 보수통합 논의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만행에 끓어오르는 분노, 폭거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송구함 등 이 모든 감정을 모아 의원직 사퇴를 결의했다”며 “이 결기를 가지고 계속 투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공수처법 표결 전 4+1협의체가 선거구 획정 시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 보장을 선거구 획정위에 권고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선거법 날치기에 이어 선거구 획정도 제1야당과 협의하지 않고 날치기로 정하겠다는 뻔뻔함”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우선 오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독재악법’ 비판과 ‘3대 국정농단’ 의혹사건을 규탄하는 여론전을 벌인다. 황교안 대표는 전날 의총에서 보수통합에 대한 방안을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의 강경기조에 따라 오는 7~8일 예정된 정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이후 임명동의안 표결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민생 법안의 국회 처리 전망도 어두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당의 의원직 총사퇴 카드 등에 대해선 야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통합 비대위를 구성해서 새롭게 출발하거라. 그래야만 야당이 산다”고 지도부 퇴진과 비대위 설치를 촉구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의원은 “비호감 1위인 정당 소속 의원들의 사퇴는 모두를 행복하게 할 뿐”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아울러 오는 6일쯤 본회의를 열어 또다른 패스트트랙 법안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처리에 나설 계획이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한국당이 할 일은 의원직 사퇴 결의가 아니라 조속히 민생법안 처리에 나서는 길”이라고 압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전날 공수처 법안 표결에서 여당 의원으로선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지지층에게 뭇매를 맞았다. 검사 출신인 금 의원은 일관되게 공수처 설치에 반대해 왔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금 의원의 기권 선택을 ‘해당행위’라 비판하며 “한국당 당론을 따를 거면 한국당으로 가라”는 원색적인 글까지 수백 건이 게재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금 의원에 대한 징계 여부에 대해 “논의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필재·장혜진·안병수·곽은산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