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범여권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협의체가 올해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 그리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향해 “아들 공천”을 외쳤다. 문 의장 아들 석균씨가 21대 총선에서 아버지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갑에서 출사표를 던지자 이를 두고 ‘세습 공천’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비판한 것이다. 한국당에서는 문 의장이 무소속이지만 아들의 민주당 공천을 위해 예산안과 쟁점 법안을 강행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문 의장 아들은 현재 민주당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습 논란에 대해) 피하지 않겠다. 내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라며 “당내 경선에서 정정당당하게 당과 의정부시민의 평가를 받고, 공천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버지 텃밭에서 도전한 아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충남 공주·연기 선거구에 나가 당선됐다. 정 의원 부친인 정석모 전 의원은 그 지역에서 10∼15대 내리 당선된 인물이다. 직전 의원이 아버지였다고 유권자들의 표심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에 “김일성, 김정일이냐는 말도 들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더 열심히 지역구를 뛰어다녔다”고 당시를 기록했다.
현역은 아니지만 남경필 전 경기지사와 정호준 전 의원도 부친의 지역구를 이어받은 사례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1998년 남평우 전 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수원 팔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 중이던 남 전 지사는 부친 사망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정치 초반에는 선친의 후광을 입었지만 당내 쇄신운동을 주도하며 5선에 성공하고 경기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의료 관련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민주평화당 소속의 정호준 전 의원은 3대 세습정치의 사례다. 정호준 전 의원 할아버지인 정일형 전 의원은 2∼9대 국회의원을 서울 중구에서 지냈다. 정일형 전 의원이 1977년 3·1 민주구국사건에 연루되며 의원직을 잃었고, 아들 정대철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대철 전 의원은 그 지역에서 6선을 지냈다. 정호준 전 의원은 33세에 부친의 지역구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은 18대 선거에서 낙선하고 19대 국회 때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당선증을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아버지 노승환 전 의원은 서울 마포에서 5선(8·9·10·12·13대)을 지낸 인물이다. 이후 민선 1·2대 마포구청장을 지냈다. 노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서울 마포갑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아버지가 국회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들의 같은 지역구 출마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고 한다. 노 의원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10년 만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정한 출발이 아니었다고 봤다”며 “대신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19대 때 다시 당선돼 들어오니 그때 사람들이 ‘제대로 된 거구나’라고 인정했다. 그다음부터는 부친 얘기가 쏙 들어갔다”고 밝혔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아버지 김진재 전 의원(5선)의 지역구였던 부산 금정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나와 배지를 달았다.
◆아버지 텃밭 떠나 홀로선 아들
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김상현 전 의원이다. 김상현 전 의원이 17대 총선에서 광주 북갑에서 낙선할 때 그의 아들 김영호 의원도 서대문 갑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김영호 의원은 서대문을로 지역구를 옮겼고 4수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영호 의원은 “최대한 아버지 그림자를 빨리 벗어나려고 했다”며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당신이 안 도와줘서 영호가 계속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구박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제가 세습일 수 있지만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2세 정치인도 정치를 할 수 있지만 아버지께 의존하려는 것보다는 확실한 정치적인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의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은 대구 중구에서 재선(13·14대)을 지냈다. 유 의원은 부친과 똑같은 지역구는 아니지만 대구 동구을에서 17∼20대 내리 4선을 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부친은 초대 전북도의원을 지낸 안기남 전 의원이다. 안 의원은 평화민주당 공채 1기 출신으로 당직자 할당 비례대표를 통해 18대 때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고향인 전북 고창이 아닌 서울 동대문갑에서 연거푸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안 의원은 지역구를 물려받진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어깨너머로 아버지께 정치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아버님이 활동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릎으로 문지방을 넘을 때부터 정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부친에 이어 2대가 연속 비례대표 출신이다.
2세 정치인 대다수는 지역 조직 등을 물려받지는 않았어도 부친의 정치활동을 보면서 어릴 적부터 정치인 꿈을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당 정우택 의원은 통화에서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꿈을 키웠지만 실현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2세가 나온다고 무조건 찍어주지 않는다. 모두 심판받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2세 정치인을 세습 프레임에 가둬 비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국회의원은 선출직이기 때문에 기업·교회 세습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며 “2세 정치인이 출마한다고 해서 무조건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세습이 못마땅하면 유권자들이 경선이나 본선에서 떨어뜨리기 때문에 결국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뛰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