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사에 대한 초강경 대응책으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사실상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4년 반 만에 수포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외신들은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고 우려했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5일(현지시간) “이란이 2015년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 농축 제한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이번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한 이래로 가장 명백한 핵비확산 위협을 나타낸다”고 전했다.
◆13년 노력 수포로
◆실낱같은 협상 여지
이란은 이날 핵합의 사실상 파기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면서도 당장 우라늄 농축을 어느 수준으로 복원할지에 대해 밝히지는 않았다. 또한 이란은 유럽 상대국들과의 협상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란이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약속도 철회하지 않았다. IAEA에 대한 협조 역시 “이전처럼 계속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담당 전문가 알리 바에즈도 트윗으로 “이란이 여전히 유럽을 자기 편으로 원하고 있으며 아직 합의를 파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알자지라는 “(그럼에도 이날 발표는) 우라늄 농축 제한 조항은 이란이 핵무기를 생산할 물질을 충분히 갖지 못하도록 막는 것으로서 핵합의의 핵심”이라며 “이스라엘이 이란의 원자폭탄 생산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오고 있는 만큼, 역내 긴장도를 훨씬 높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협상 여지를 남겨뒀다고는 하나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핵합의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의 성과인 이란 핵합의를 ‘부실합의’라고 비판하며 대통령에 당선됐고, 자신의 업적으로 북한과의 핵합의를 이상적 대안으로 제시하려 해왔다는 점도 이란 핵합의 존망이 불투명한 이유로 꼽힌다.
BBC방송은 서방 싱크탱크 보고서들을 종합해 이란의 군사력, 특히 비대칭 전력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이란 군사력은 미국에 비해 객관적 열세로 평가되나 미사일과 드론, 사이버전 등 상당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사일 전력은 중동 최대 규모로 미국과 우방인 사우디와 걸프지역 많은 목표물이 이란의 중단거리미사일 사거리에 있으며, 핵합의 체결 후 대외적으로 개발이 중단된 장거리미사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
독일·프랑스·영국은 이날 정상 간 전화통화 뒤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핵합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치들을 철회할 것을 이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란에 “추가적인 폭력 행위나 이를 조장하는 행동”을 자제토록 촉구하면서 “현 시점에선 (긴장의) 단계적 완화가 중요하다. 모든 관련국이 최대한도의 억제와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