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사 갈등이 늘었음에도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오히려 줄어 최근 20년간 집계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현대자동차 등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사분규 없이 임금단체협상이 타결된 점을 근로손실일수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노조의 파업 전략이 점차 다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노사관계 통계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 건수는 141건으로 전년(134건) 대비 5.2% 증가했지만, 근로손실일수는 40만2000일로 2018년(55만2000일)보다 27.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해 근로손실일수는 최근 20년간 최저치 수준”이라고 밝혔다.
근로손실일수는 하루 8시간 이상 조업 중단 노사분규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손실분을 측정하는 지표로, 파업 참가자 수에 파업 시간을 곱한 뒤 이를 하루 근로시간인 8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값이 커질수록 노사 갈등으로 노동현장이 문을 닫는 일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낮은 근로손실일수는 그만큼 노사가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신년사 발표에서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지난해 성과로 근로손실일수 감소를 강조한 바 있다. 임 차관은 “노사 간 합의 관행이 확산하고 당사자 간 원활한 교섭을 위한 정부의 조정·지원제도가 근로손실일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근로손실일수 감소에서 노사관계 안정 외에도 경기 불황, 노조의 파업 전략 변화 등을 읽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하면서 노조가 장기 파업으로 얻는 이득보다 임금손실, 기업 경쟁력 악화 등 손해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노사 갈등에 대한 사회·경제적 피로감이 극에 달한 점 또한 노조가 장기 파업을 기피하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과거처럼 한 달 이상 파업이 장기화하는 경향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파업을 한 번에 길게 하는 것보다 짧게 여러 번 하는 식으로 노조의 쟁의전략이 다변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근로손실일수는 감소 추세이지만, 노사관계가 안정화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른 ‘임금 노동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의 2007∼2017년 평균치를 보면 한국은 42.33일로 일본(0.25일), 미국(6.04일), 네덜란드(8.37일), 영국(23.36일)보다 훨씬 많았다. 임 차관은 “근로손실일수는 국가별로 통계 작성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