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집 중 한 집꼴 '나혼자 산다'… 수입·주거 열악해 미래 ‘불안’ [S 스토리]

한국 사회 대세가 된 1인 가구 / 화려한 싱글 꿈꾸지만 현실은 팍팍 /“육아·가사에 안 치이고 자기시간 영위” / 1인 가구 44% 미혼… 최다 비중 차지 / 이혼·사별로 고립된 홀몸노인도 많아 / 2020년 600만 돌파 전망, 2047년 832만 / 36%가 월평균 소득 200만원 못 미쳐 / 서울시 1인 가구 절반 이상 ‘월세살이’ / 정부, 2020년 상반기 제도 정비 계획 / “중장년층까지 확대해야” 지적도

서울에서 광고회사에 다니는 34세 김현아(여)씨, 광주에 살면서 개인사업을 하는 42세 최혁수씨, 인천에서 식당일을 하는 62세 박미순씨(여, 이상 가명). 성(性), 나이, 사는 곳, 하는 일도 제각기인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독립된 공간에서 의식주의 일상생활을 혼자 영위하는 사람’ 바로 1인 가구다.

 

현아씨는 7년 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년이 채 안 돼 독립했다. 부모님 역시 서울에 살고 있지만 직장생활이 안정되자마자 주저 없이 집을 나섰다. 현아씨는 독립해 1인 가구가 된 이유를 “혼자 있는 것이 편해서”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들이 꼽는 1인 가구의 최대 장점은 ‘자유’다. 그러나 1인 가구는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황혼이혼으로 홀로 살게 된 미순씨는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세 가구 중 거의 한 가구꼴로 늘면서 우리 사회의 ‘보통가구’가 된 1인 가구를 겨냥한 정부의 맞춤형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처음으로 30%를 넘어선다. 1인 가구는 이미 2015년에 부부로 이뤄진 2인 가구나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된 4인 가구 등을 모두 제쳤다.

 

홀몸노인으로 대표되는 저소득·고령층 1인 가구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화려한 1인 가구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가구 형태가 1인 가구다.

 

현아씨와 혁수씨, 그리고 미순씨를 통해 2020년 우리나라 1인 가구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1인 가구 절반 가까이는 미혼 “혼자가 편해서”

 

현아씨는 식사는 주로 밖에서 해결하고, 약속이 없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주문해서 먹는다. 스마트폰의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현아씨의 ‘주방’이다. 현아씨는 “가족의 간섭없이 나의 생활 패턴이나 일상 등을 즐기고 싶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청소나 빨래 등 집안일이 번거롭지만 주말에 한 번 정도이니 크게 힘들지 않다. 현아씨는 “최근에는 집안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까워 한 달에 한 번 정도 청소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라며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들이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 청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추천했다”고 귀띔했다.

 

혁수씨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기 관리와 취미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평일에는 운동하고 주말에는 취미인 낚시하러 다닌다. 생활의 중심이 혁수씨 자신에 맞춰져 있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결혼을 일부러 미루려고 한 것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늦어졌다는 혁수씨는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겠지만 아직은 혼자인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에, 육아에, 집안일에 치이는 친구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며 “돈 벌어서 모두 집에 가져다주고, 친구들과 맘 놓고 술자리 한번 못하는 게 친구들의 모습이라면 나는 그 반대로 산다”고 웃었다.

현아씨와 혁수씨는 미혼 1인 가구의 전형이다. 2015년 기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인 가구의 혼인상태를 조사했더니 미혼이 4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1인 가구는 첫 번째로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두 번째는 미혼 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한다”며 “고령화 속도만큼 미혼 인구도 빠르게 는다”고 설명했다.

 

◆경제상태·주거 상대적 열악… 주관적 만족도도↓

 

미순씨는 몇 해 전 이혼을 하면서 1인 가구가 됐다. 같은 조사에서 이혼에 따른 1인 가구는 15.5%를 차지했는데 2000년 9.8%에 비해 비중이 크게 늘었다. 사별을 통한 1인 가구 비중이 2000년 35.1%에서 2015년 29.5%로 준 것과 대비된다.

미순씨는 이혼하기 전까지 몇 년간 별거 기간이 있었다. 독립한 자녀들이 이혼을 권유했다. 미순씨는 “이혼을 하고 나니 후련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미순씨는 그러나 “혼자 산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다”고 털어놨다. 일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 잠이 드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부분이 걱정이다. 현재의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지만 나이가 더 들고 건강이 나빠져 일할 수 없게 될까 두렵다.

미순씨만의 걱정이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6월 펴낸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고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35.9%가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100만원 미만이 11.3%, 100만~200만원 미만이 24.6%였다. 200만~300만원 미만이 35.7%, 300만~400만원 미만 17.1%, 400만원 이상이 11.3%였다. 종사상 지위별로는 상용직 임금근로자가 53.2%, 임시·일용직 임금근로자 25.8%, 비임금근로자가 21.0%를 차지했다.

현아씨, 혁수씨도 “혼자 살다 보니 돈이 모이질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하면 1인 가구는 다인 가구에 비해 음식, 숙박, 주거, 교통 등 기본 생활비에 대부분의 소비가 집중됐다. 2017년 기준 서울시 1인 가구의 주택점유형태를 보면 자가 17.6%, 전세 22.9%, 보증금 있는 월세 45.9%, 보증금 없는 월세가 10.2%로 나타나 자가 비중이 50%를 넘기는 다인 가구와 큰 격차를 보였다.

 

주거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다세대주택에 사는 현아씨가 최근 흉흉한 뉴스를 보며 두려움에 떤다.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단독주택 거주비율이 47.2%로 일반가구 32.1%보다 현저히 높았고, 아파트 거주비율은 29.9%로 일반가구 50.1%에 한참 낮았다.

 

정서적인 부분은 어떨까. 현아씨와 혁수씨도 혼자 사는 생활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현아씨는 “혼자 살아서 외롭지도 않은데, 또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혁수씨는 “나를 위해 투자를 하다가도 가끔 공허한 기분이 들 때면 결혼한 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의 ‘주관적 만족감’을 1인 가구와 다인 가구로 나눠 분석해보니 ‘만족한다’는 응답이 1인 가구는 23.3%, 다인 가구는 30.8%로 차이가 컸다. ‘불만족하다’는 응답은 1인 가구가 29.7%, 다인 가구가 21.8%였다.

 

◆2047년 1인 가구 832만 달해… “정부 대책 마련해야”

 

1인 가구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2000년 222만4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15.5%에 달했던 1인 가구는 5년 뒤인 2005년 317만1000가구(20.0%)로 껑충 뛰었고, 2015년 520만3000가구(27.2%), 올해는 전체 가구의 30.3%를 차지하는 616만6000가구로 처음으로 600만 가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7년에는 711만4000가구(32.9%), 2047년엔 832만 가구(37.3%)까지 늘 것으로 통계청은 봤다.

하지만 1인 가구를 위한 정부 대책은 걸음마 단계다. 1인 가구를 ‘비정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여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통계청이 펴낸 ‘한국의 사회동향 2019’ 보고서에서 ‘1인 가구의 삶의 질’ 부분을 집필한 서울연구원 변미리 미래연구센터장은 “생애주기 전체를 봤을 때 그 시기의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지 누구든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기간이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1인 가구 지원책이 중요하다”면서 “1인 가구에 대한 지원보다 ‘탈 1인 가구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그런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인 가구 중에는 스스로 선택한 1인 가구보다 ‘비자발적’ 1인 가구가 다수를 차지한다”며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빈곤’과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공동체 사회로 나가는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청년·고령층에만 맞춰진 1인 가구 정책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종합패키지를 만들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로 주거정책·사회복지정책 등 기존 4인 가구 기준이었던 정책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라며 1인 가구를 위한 종합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에서도 “주택 공급의 확대도 차질없이 병행해 신혼부부와 1인 가구 등 서민 주거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1인 가구의 주거문제를 짚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고령·1인 가구 증가에 대응한 생활여건 개선 및 관련 산업 육성 계획의 연장선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1인 가구 시대에 맞춰 관련 제도 정비를 포함한 주거·사회복지·산업적 측면의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주거 측면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비율을 가구원 수별 입주 수요에 맞춰 면적별로 설정하고, 소형(1~2인) 가구 대상면적 공급 확대를 추진한다.

홀몸노인 등 취약 1인 가구에 대해서는 6개 노인 돌봄 재정사업을 통폐합하기로 했다. 재정사업을 통합하는 동시에 예산은 3728억원으로 전년(2485억원)보다 1243억원(50%) 늘리고, 재정사업 대상도 45만명으로 전년(35만명) 대비 28.5% 늘리기로 했다. 돌봄서비스는 6개에서 21개로 늘어난다. 1인 가구, 한부모가족 등 가족형태별 맞춤형 지원을 위한 가족센터 건립도 2019년 현재 5개소에서 내년도에 64개소로 대폭 늘린다는 계획도 담겼다.

 

정부가 1인 가구를 위한 종합적인 정책 마련에 나선다는 발표는 반갑지만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과 고령층에만 초점이 맞춰진 1인 가구 정책을 중장년층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도 쏟아진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주거정책만 하더라도 이미 2000년대 중반에 1인 가구 비중이 20%를 넘어섰는데도 4인 가구 중심의 주택정책이 이어졌다”면서 “인구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가 인제야 그 부분을 포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변 센터장은 “최근 급속도로 늘고 있는 중장년 1인 가구에 대해선 뚜렷한 정책이 없다. 중장년 1인 가구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