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詩를 담다

사진작가 이정진 15일부터 개인전 / 美·캐나다 여행하며 대자연 모습 포착 / 한지에 인화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 자연 현상·특징에 자신의 주관 입혀 / 첫 공개 ‘보이스’ 연작 포함 25점 선봬
고래 등을 연상케 하는 바위섬, 얼기설기 한데 섞인 앙상한 나뭇가지들, 하늘을 그리는 산능선…. 한지에 새겨진 자연의 원시적 모습들은 수묵화 같기도, 목탄화 같기도, 심지어는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인지, 어디인지, 언제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자연의 결 속에 흐르는 무언의 말에 집중해본다.

 

사진작가 이정진(59)은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하며 대자연의 묵시적 순간들을 렌즈로 포착해왔다. 그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특징과 현상들을 극적으로 확대하거나 제거하면서 자신의 주관적 인상을 표현한다. 이정진의 작품들은 회화적이고, 시적이며, 명상적이다.

전공은 도자였지만, 이정진은 미대에 입학하자마자 카메라를 들었다. 198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수제 한지에 붓으로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인화하는 ‘아날로그 프린트’ 수작업 기법을 통해 독특한 사진 작업을 하며 30여년간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깔끔하게 마감된 매끈한 여느 사진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는 한지의 미세한 결뿐 아니라 티와 흠이 그대로 남아 있다. 덕분에 관객들은 찍힌 대상을 읽는 대신 이미지와 프린트 질감의 조화를 느끼며 온몸으로 작품을 체험하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광활한 대자연을 촬영한 ‘보이스’(Voice) 연작. 자연의 근원과 이정진 사진 속의 변화된 형태 사이의 거리는 작가의 내적 항해로 가늠되며, 그것은 단순히 보여지기보다는 느껴졌음으로 작동한다. PKM 갤러리 제공

한국 현대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정진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전시가 2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다. 삼청로 PKM갤러리는 새해 첫 전시로 이정진의 ‘보이스’(VOICE)전을 15일 개막한다.

내면의 숨을 대자연 풍경을 통해 사진에 담아낸 ‘오프닝’(Opening 2015∼2016) 연작과 국내외에서 최초 공개되는 최근작 ‘보이스’(2018∼2019) 연작까지 25점을 PKM갤러리 전관에 선보인다. 이번 전시 작업은 기존의 한지 아날로그 수제 프린트와 디지털 방식을 결합한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갤러리 본관에 전시한 ‘보이스’는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대형 사진 연작이다. 주된 촬영 대상은 미국과 캐나다의 광활한 대자연인데, 작가는 이를 있는 그대로 찍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지며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들이 반영된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자연에 투영된 작가 내면의 목소리이자 자연이 작가에게 던져주는 메아리이기도 하다.

세로 프레임에 자연을 담은 ‘오프닝’(Opening) 연작. 한 장의 세로 사진은 땅 위에 서 있는 우리 각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PKM 갤러리 제공

별관에 전시한 ‘오프닝’ 연작은 인적 드문 자연 속에서 마주한 풍광을 세로형 화면에 담은 작품이다. 일반적인 파노라마 풍경 사진과 달리, 위아래로 긴 이 한지 작업은 우리나라 족자와 닮았다. 광활한 사막의 파노라마 뷰를 상상할 때 이정진의 세로 사진은 시각적으로 갇혀 있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통찰하게 하는 열림이 있다. 작가는 “이 연작을 통해 인간의 제한된 인식의 테두리를 넘어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오프닝’이란 제목과 함께 좁은 세로 프레임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PKM갤러리는 이번 개인전 기간인 다음달 1일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한다. 전시는 3월5일까지.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