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받고 가습기살균제 업체에 증거인멸 지시한 공무원, 유죄

재판부 “검찰 수사 예상되자 자료 파기 지시한점 죄질 좋지 못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오섭(왼쪽)씨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가습기살균제 업체 애경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내부자료를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환경부 공무원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환경부 소속 공무원 최모씨(45)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최씨는 애경산업 직원을 여러 차례 만나 향응을 접대받고 이후 환경부 내부문건을 제공했다”며 “검찰의 애경 수사가 예상되자 자료를 파기하라고 지시하는 등 죄질이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가 자신들을 구제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피해자들의 믿음도 무너졌다”며 “다만 초범이고 수수한 뇌물이 203만원에 불과한 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앞서 최씨는 2017년 4월 18일 부터 지난해 1월31일까지 애경 측으로부터 235만원 상당의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은 뒤 국정감사 등 환경부의 각종 내부 자료를 애경 측에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 대응 태스크포스(TF) 등에서 근무한 최씨는 애경 측에 금품 및 향응을 받은 뒤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환경부 실험 결과, 주요 관계자 일정 동향 등 내부 자료를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애경산업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메신저를 이용해 애경산업 직원에게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료를 미리 정리하라. 별도의 장비를 사용해서 반복 삭제해야 한다” 등을 조언한 혐의도 있다.

 

실제 조언을 들은 애경산업 직원은 회사 캐비넷과 책상 등에 보관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파쇄하고 컴퓨터에 있던 파일도 검색한 뒤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최씨는 애경 측에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지난 2018년 11월쯤 검찰의 애경에 대한 압수수색 가능성이 높아지자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각종 자료를 미리미리 정리해달라”, “별도 장비를 사용해 반복적으로 삭제해야 한다”고 애경 측의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받는다.

 

애경 측은 최씨의 이같은 말을 전달받고 캐비닛 등에 보관 중이던 가습기살균제 자료를 파쇄기로 없애고, 법무팀 컴퓨터에 있던 관련 파일들을 검색어 설정을 통해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봉식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