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대내외 압박과 견제에도 금강산 개별관광을 포함한 남북협력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권 임기는 후반기로 들어섰는데 북·미 교착은 길어지고 남북관계마저 얼어붙은 상태로 시간만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개별관광 자체는 기술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북한과 미국의 반응에 실제 추진 가능성이 달렸다고 보고 있다.
◆미, 정부 입장 존중한다면서도…“‘워킹그룹’ 필요”
국무부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전날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한·미 간 워킹그룹을 통해 조율하자며 사실상 우리 정부 구상에 제동을 거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하지만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를 만난 뒤 “워킹그룹의 효율성을 살려서 한다면 괜찮은데 비건 대표와 통화하거나 직접 만나서 협의할 수도 있고 워킹그룹을 열 수도 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주권 사항’임을 강조한 금강산 개별관광 문제를 워킹그룹에서 다루게 되면 단계마다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 구상에 반발하지 않으면서도 해리스 대사가 워킹그룹을 꺼내든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을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으로서는 11월 대선까지 북한 문제에서 현상 변경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으로 제재 문제에 변화가 생기는 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호응 가능성이 더 문제
전문가들은 금강산 개별관광의 실제 추진 여부와 관련해 미국보다 북한의 반응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금강산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벌크캐시 유입이 없기 때문인데 그 말은 곧 북한으로서는 이 방안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남측을 철저히 배제하는 북한 기조를 보아서도 이 정도의 남북협력사업에 북한이 호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통지한 상태지만, 정부는 “남북 협의 중인 사항”이라고만 설명했다. 일각에선 중국 사업체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필승의 신심 드높이 백두의 행군길을 꿋꿋이 이어나가자’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백두산의 칼바람을 견디며 항일투쟁을 한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의 제재 압박을 극복하자고 촉구했다. 신문은 “오늘의 정면돌파전은 우리를 고립 질식시키려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제재 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장엄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현 상황에서 금강산 개별관광 정도의 남북협력 사업에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의 사업 추진은 북한에 남측의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성 정도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