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시작해 4개월 넘게 타고 있는 호주 산불은 남한 면적보다 큰 약 10만7000여㎢의 땅을 재로 만들었다. 소방관을 비롯한 30여명의 인명 피해를 냈고, 2000채 이상의 집을 전소시켰다.
광범위한 숲과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이 코알라와 캥거루, 왈라비, 하늘다람쥐 등 호주에 사는 12억5000마리의 야생동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5억마리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전언에서 그 규모가 불과 2주 만에 2배 넘게 늘어났다. 말 그대로 대재앙 수준의 참사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호주 산불에 주요국 정상과 세계적인 셀럽들이 연일 깊은 우려와 지원을 호소하였고, 그 덕분에 호주 야생동물을 살리기 위한 대규모 후원금과 후원 물품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ARMY) 역시 이 후원에 동참했다.
각 업계를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한국에서는 포스코가 가장 먼저 호주 적십자사에 산불 재해기금 4억원을 전달했으며, 구찌(Gucci)와 발렌시아가(Balenciaga)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케링 그룹(Kering S.A.) 역시 100만달러(11억5900만원)를 산불 대응 단체에 기부했다.
특히 발렌시아가는 이번 화재로 희생된 야생동물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코알라를 직접 돕는 기금을 마련하려고 한정판 특별 제품도 출시했다. 후드 티셔츠(사진) 92만원, 반소매 티셔츠(〃) 54만원 등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전액 코알라를 위해 쓰인다는 방침에 벌써 품절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지속가능 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생명을 살리자, 삶을 바꾸자’(Saving Lives, Changing Lives)라는 슬로건 아래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World Food Programme)과 함께 대대적인 협업을 발표했다.
메시지처럼 디자인도 매우 간결하고 강력했다. 발렌시아가 브랜드 이름 옆에 WFP 로고를 커다랗게 새긴 것이 전부다. 다소 투박해보이는 이 컬렉션은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기아와 식량, 산불 등의 재난을 활용하는 마케팅이라고 비난했지만, 발렌시아가의 입장은 명쾌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는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기아 문제를 발렌시아가의 브랜드 힘으로 알리고 지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유엔과 명품이 만나서 인류와 지구환경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발렌시아가는 2018년 후반기에만 25만달러(한화 2억8900만원)을 기부했고, 캡슐 컬렉션의 수익금 일부도 기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발렌시아가에서 앞세운 유엔과 상업 브랜드 간 협업은 글로벌 기업 마케팅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명품·패션산업과 식·음료 시장의 주고객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가 열광하는 키워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변하는 키워드인 ‘친환경’, ‘지속가능’, ‘글로벌’은 유엔과의 협업을 통해 더욱 강력한 매력을 발휘한다. 이전 세대와 다르게 밀레니얼 세대(1980~2004년생)는 초·중·고교에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에 대한 교육과정을 거쳐왔고, 최근에는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대한 내용도 의무적으로 배우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명품 타이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높은 가치와 손잡음으로써 글로벌 지속가능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 가치에 이제는 국내 기업도 주목해야 할 때다. 미래 및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지속 가능한 기업인지 직접 보여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훈 UN지원SDGs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지원SDGs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 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