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따뜻한 봄이 되면 이유 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봄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가 코끝을 어루만졌다. 돗자리 하나와 은박지에 쌓인 김밥 한두 줄이면 언제 어디서든 소풍을 즐겼다. 친구들과 소풍을 가면 이름은 같은 김밥이지만 집집마다 재료와 크기, 맛, 모양이 모두 달라 서로 비교해가며 나눠먹는 재미도 소풍의 묘미였다. 그렇다면 우린 김밥을 언제부터 먹어왔을까. 1281년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부터 김을 ‘해의(海衣, 바다의 옷)’라고 부르며 먹기 시작했다. 정월대보름에는 밥과 볶은 취나물을 배춧잎이나 김으로 싼 ‘복쌈’을 먹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의 조리서 ‘시의전서’를 살펴보면 ‘채취한 김을 손으로 문질러 잡티를 제거하고, 소반 위에 펴 놓고 꿩 깃털로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재운 후 구워서 네모 반듯하게 잘라 담고 꼬치에 꽂는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조미김과 매우 유사하며, 이 김을 이용해 김쌈을 해먹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최근 김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김밥은 분식점 고정메뉴가 되었고, 프랜차이즈 김밥 전문점을 시작으로 전국 모든 편의점에는 삼각김밥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염산처리 하지 않은 무산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8년인 1640년경 광양 태인도에서 김여익 선생이 김 양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이 김 양식을 시작한 1683년보다 반세기 앞선 역사다. 광양 태인도의 김시식지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 선생을 모신 영모재와 함께 김 역사관이 있다. 광양은 섬진강의 민물과 광양만의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김의 맛과 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김을 양식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섶을 뭉치에 묶어 갯바닥에 꽂아 놓고 민물과 썰물 때 섶에 붙은 김을 채취하는 ‘섶양식’에서 대나무발에 양식하는 방식, 그물발 지주식 양식, 노출 부류식, 무노출 부류식 등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김이 생산되는 방식을 살펴보니 조금은 불편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산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김이 양식되는 동안 파래, 규조류 등 이물질이 붙어 김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김의 잡조(雜藻)를 제거하고, 병해방제, 성장촉진 등을 위해 보통 산처리를 한다. 이렇게 하면 김의 윤기와 색, 바삭함이 더 좋아지고, 단시간에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식용이 가능한 염산이라도 우리가 먹는 김에 산처리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다. 이 때문에 산처리를 하지 않은 무산김이 요즘 인기다. 농산물로 따지면 무농약과 같다. 장흥이 대표적이다. 이곳의 김 양식 어가는 190여곳인데 대부분 부유식으로 양식하며, 유기산이나 무기산을 쓰지 않는 대신 바다에 떠 있는 김발을 수시로 뒤집어 공기 중에 노출해 잡조를 제거하고, 병해를 방제한다. 산을 뿌리는 것보다 인력과 기름값이 더 들어 가격은 비싸지만 건강한 음식이라는 가치가 소비자들의 선택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며 무산김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 식재료인 만큼 세계인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고, 또 ‘노리(Nori)’가 아닌 ‘김(Gi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김 양식 어민들과 소비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