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식탁’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아닐까? 지금 오육십대에 접어든 세대만 하더라도 유년기 식사 풍경의 대부분은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모습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둥근 밥상이 그립다”고 노래한 모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식과 관련된 이 세대의 상상력은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둥근 두레밥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최근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 집’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보면서 불현듯 이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시선으로 가족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이 영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식탁’이었다. 무엇보다도, 4인용 식탁! 영화는 그야말로 식탁에서 시작해 식탁으로 끝난다. 우리 집의 주인공 12살 하나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의 관계를 개선하고 우리 집을 재건하고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리를 하고 밥을 차리며 식구들을 식탁 주변으로 불러 모은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들의 업무에 바빠 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14살 은희의 시선으로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1994년의 내밀한 시대적 공기를 재현하고 있는 벌새 역시 마찬가지다. 정글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맨몸으로 달려온 은희 아버지는 집안의 규율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전부 식탁에서 행한다. 그는 아침 식탁에서 아들의 입시 경쟁을 독려하고 딸들의 규율을 감시하며 아내의 욕망을 제지한다. 그는 식탁의 군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레밥상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전형적인 남성의 것이라면 4인용 식탁에서의 고독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영화감독들의 시선은 지극히 여성적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세대와 젠더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계보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어머니가 펼쳐놓은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제비새끼처럼 짹짹거리며 어머니의 음식을 탐하던 날의 기억을 소환하는 남성 시인은 식탁에 둘러앉을 때면 늘 엄습해오던 외로움과 감시의 시선에 짓눌린 여성 영화감독들의 아버지(가부장)일 수도 있겠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