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황교안 대표의 수도권 출마를 놓고 후보 지역을 대상으로 가상 여론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황 대표의 ‘수도권 험지출마’ 선언 후 한 달 가까이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천관리위원회가 ‘수도권 어벤저스’ 추진과 더불어 종로에 발목 잡힌 황 대표에게 명분과 실리를 만들어주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의도연구원은 지난달 30일을 전후로 서울 용산구·양천갑, 구로구·영등포구 등의 지역구 주민을 상대로 △지지정당 △후보의 인지도·호감도 △양자대결 투표 의향 △정권심판론 등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서울 종로구는 후보지에 없었다. 양자대결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혹은 유력 출마 후보자 대 한국당 소속 후보자를 놓고 투표 의사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황 대표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출마 예정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인지도와 호감도를 물어보는 질문에도 황 대표의 이름이 포함됐다. 황 대표의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인지도·호감도·투표 의향, 상대 후보·당내 후보와의 상대적인 경쟁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것이다. 해당 설문조사가 실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민주당 대표급 후보자는 급히 지역구의 지방의원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하는 등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황 대표는 지난달 3일 ‘보수통합’과 ‘헌신’을 외치며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했다. 중진의원과 당 대표급 주자들의 동반 수도권 출마를 촉구하며 비례대표 선택지를 지웠다. 그러나 출마 선언 후 한 달 동안 출마 지역을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부터 여러 민주당의 수도권 지역구 후보자들이 황 대표를 향해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며 자극하고 나섰다.
황 대표의 출마지역 검토는 공천관리위원회와 교감 아래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의 출마지역은 단순히 황 대표 개인이 아니라 한국당의 수도권 선거 구도를 좌우하는 방향타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의 ‘수도권 출마’ 선언으로 종로에서 이 전 총리와의 빅매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당내에서는 황 대표의 전국 선거 지원 필요성, 패배에 따른 후유증, 정권심판 프레임 희석 효과 등의 요인 때문에 ‘험지’라는 명분과 ‘승리’라는 실리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역구를 검토해왔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도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종로 출마 이야기를 나눈 것은 황 대표 발목을 잡고 있는 ‘종로 출마’ 프레임의 탈출구를 만들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대신 황 대표와 당 대표급 주자들의 ‘수도권 어벤저스’ 혹은 ‘한강 벨트’를 이뤄 동반 출격하는 방안이 명분·실리를 잡기 위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황 대표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험지에서 민주당 거물과 맞붙는다면 그 동력으로 당 대표급 주자들의 동반 출마를 유도, ‘정권심판론’을 앞세워 수세에서 공세로 바꾼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각자도생은 공멸”이라며 “당 대표급 후보자들이 동반해서 수도권 선거에 뛰어든다면 판을 흔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