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국가가 만들어준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 도서관 회원증도 못 만드는 게 말이 되는지….”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박모씨는 지난해 도서관을 찾아온 한 어르신을 돌려보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회원 가입을 위해 도서관을 찾은 노인은 주민등록증을 가져왔음에도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어 회원증 발급에 필수적인 온라인 가입 절차를 완료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인증 수단인 아이핀(IPIN·인터넷 개인식별번호) 역시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으면 온라인으로 발급받기 어려웠으므로 박씨는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아이핀 발급부터 받아오셔야 한다”며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본인명의 휴대전화를 가진 일반 성인들의 경우 문자 한 통이면 인증을 완료할 수 있어 어려움을 느끼지 않겠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의 경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보호자가 있는 14세 미만 아동이라면 부모 명의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 아이 명의의 아이핀 아이디를 발급한 후 주민등록등본과 신분증을 가지고 도서관을 방문해야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보호자가 없는 노인들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본인이 직접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방문해 아이핀을 발급받은 후 도서관을 재방문해 인증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도서관법’ 제8장에 따르면 ‘도서관은 모든 국민이 신체, 지역, 경제, 사회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국가 정보화 기본법’ 제32조는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 고령자 등이 쉽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이 같은 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특정 집단이 도서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서관정책과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돼 도서관이 직접 본인인증을 받기 어려워져 어쩔 수 없다”며 “현장에서 불편함이 있다는 걸 정책부서에서도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이 여전히 온라인 가입 외의 수단으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영국 런던시청 사이트에 소개된 런던 도서관 이용법을 보면 온라인 가입도 가능하지만 신분증과 주소증명서류를 구비할 경우 도서관을 찾아 현장에서 바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미국 공공도서관 역시 신분증과 주소 증명서류만 있으면 현장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