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슬람 세계를 혁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아랍의 봄’은 10년 전 튀니지의 한 노점상 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되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힘있고 가진 자들의 부패한 세상에 저항했던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꿈은 빠르게 실현되는 듯했다. 불타오르는 민중봉기의 열기로 1987년부터 20년 넘게 튀니지를 철통 지배하던 벤 알리 대통령을 한 달 만에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군부 독재로 돌아간 이집트, 장기 내전의 시리아나 리비아에서 보듯 아랍의 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혹하다. 그나마 튀니지가 있다. 2014년 초대 민선 대통령 에셉시를 선출하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 다시 대선을 치러 반부패 의지를 강하게 내세운 헌법학자 사이에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향기로운 꽃의 이름을 딴 튀니지 ‘재스민 혁명’만이 아랍의 봄에서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열매를 맺은 셈이다.
아랍 세계의 역사적 혁명 성지 ‘튀니스’를 방문하게 된 것은 신생 민주체제의 온도를 재 볼 절호의 기회였다. 자유의 행복을 누리리란 나의 기대와 달리 튀니지 사람들은 불만 가득했다. “벤 알리 시대가 훨씬 살기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우리는 시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자위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서방의 뉴스를 통해 바라본 튀니지는 성공적으로 민주주의 실험을 지속하는 어두운 아랍 세계에 빛나는 별처럼 돋보이는 존재였다. 2015년 시민사회 협의체인 ‘국민대화4자기구’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불모지에 헌정체제를 꽃피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 21명이 사망한 튀니스 바르도 박물관 테러 사건이 국제적 관심으로 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니지인들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자부심 높은 민족으로 박수를 받았다.
혁명과 민주주의, 그리고 그 덕분에 누릴 자유는 튀니지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히잡을 쓴 여성이 적었고, 남녀를 불문하고 책가방을 둘러메고 어울려 장난치며 등하교하는 활발한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자유로운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혁명을 뒤따라온 불청객 중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가 있었다. 박물관 테러가 가장 가시적이고 충격적이었지만 그 외에도 2010년대 다수의 크고 작은 테러가 이어졌다. 해빙된 언론의 자유를 가장 악랄하게 활용한 것이 근본주의 선동세력이었고 그 결과 튀니지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조직에 5000여명에 달하는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전사를 제공한 나라가 되었다.
테러로 치안이 불안해지자 당장 타격을 입은 것은 튀니지 경제의 핵심을 형성하는 관광이었다. 지중해의 낙원 튀니지의 해변으로 몰려오던 유럽인들이 발길을 끊었고 튀니지 경제는 정체기에 빠져들었다. 실업률은 15%를 상회하고 튀니지 화폐 디나르의 가치는 2010년 말 0.5유로에서 현재 0.3유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튀니지가 이 배고픈 자유를 언제까지 감내하면서 혁명의 소중한 성과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안타깝다. 특히 경제성장이 원활하던 터키조차 근래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튀니지에 대한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