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이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존 풋 영국 브리스틀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이탈리아 정신의학자 프랑코 바잘리아(1924∼1980)의 정신질환자 인권을 위한 정신보건 개혁운동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의 투쟁으로 이탈리아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크게 개선됐다.
이들을 보호하는 ‘정신병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와 협동조합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바잘리아는 정신질환자에게는 ‘자유가 최고의 치료’라고 강조한다. 정신의학계에서는 그의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요즘 근황은.
“작년에는 진료와 각종 학회 등 외부 일정으로 바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하면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범인) 안인득 사건 등 조현병 환자들의 사고와 고 임세원 교수의 안타까운 사고 등 많은 일이 생겨 학회에서 대응한 일들이 많았다.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만큼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그간 소홀히 했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벌써 2월이다. 새해의 결심을 이어갈 멘털관리법을 조언한다면.
“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뇌의 신경회로가 바뀌어야 한다. 오랫동안의 잘못된 습관과 관련된 뇌 신경회로가 형성돼 있어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과 관련된 신경회로 형성이 필요하다. 힘들더라도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하면 좋은 습관이 형성된다. 정신건강법으로 2가지를 권한다. 첫째는 정신건강에 앞서 필수적인 것이 신체건강이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극이야말로 생명체를 유지하고 활성화하는 핵심요소다. 둘째는 휴식이다. 신체·정신적인 휴식이다. 이완요법, 복식호흡, 명상, 요가 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다.”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
“고2 때 TV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을 때 맞은편 대우빌딩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서울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그냥 대구에 있는 의대를 가길 바랐다. 당시 예비고사를 앞두고 한 달간 집을 나왔다. 서울 가야 하겠다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내가 이겼다. 내 고집으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당시엔 인간, 삶과 죽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비관론(pessimism)과 숙명론적(fatalism) 세계관이 형성된 것 같다. 의대생 시절엔 동아리 지도교수가 이부영 교수님이셨다. 그것이 지금 정신과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교수님은 분석심리학을 정신의학·신화·민속·인류학 등과 접목한 분석심리학계의 태두다.”
-정신건강 의학분야에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업적이 많은데.
“1996년부터 3년간 미 하버드대 정신과에서 연수했다. 그곳에 한 연구가 뇌에서 발생하는 감마(gamma)파가 조현병에서 이상이 있고, 이것이 인지기능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논문을 세계 처음으로 학계에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인지기능 연구의 대가인 미국 UCLA의대 정신과 마이클 그린 박사는 “정신분열병에 대한 임상연구와 기초연구를 맺어주는 가교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08년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정신약물학회(CINP)의 정회원 1000명이 투표로 결정하는 5명의 평의원회 회원으로 선출됐다. 개인적으로는 강박증클리닉 도입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국내에서 강박증에 대한 치료나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2000년대 초반 서울대병원에 클리닉을 열었다. 치료법 개발과 기전 연구를 많이 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인지행동치료의 개발,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 약물치료 등을 발전시켰다. 아시아에선 우리 연구실이 가장 강력한 코호트(cohort)와 연구역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정신적인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나. 무엇이 원인인가.
“국내 정신질환 유병률은 25% 정도다. 기본적으로 정신질환은 본인의 취약성(뇌의 취약성)이 전제된다. 여기에 외부 스트레스가 동반되면 질환이 발현된다. 개인의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정치적 양극화 등 사회적 원인이 크다. 여기에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보다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보려고 하고, 그것을 합리적 방법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려는 사회풍조가 문제다. 이런 것들이 심한 스트레스가 되고 발병에도 역할을 한다. 정부에서도 정신질환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전체 보건의료 예산에서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평균 5%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5%에 불과하다. 아직 멀었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병명 개정하는 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을 설명한다면.
“2009년부터 3년간 정신분열병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당시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4000여명의 환자와 가족들이 비인권적인 병명 개정에 대해 청원을 했다. ‘Schizophrenia’라는 말은 1908년도 스위스 정신과의사 오이겐 브로일러가 명명한 것인데, 일본에서 정신분열병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정신분열병이라는 이름이 낙인을 일으킨다고 해서 2002년에 통합실조증으로 변경했는데 우리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렀다. 그래서 2008년부터 병명 개정위원회를 조직해 개명 운동을 벌여 2011년 국회를 통과한 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학회가 주도적 역할을 한 셈이다.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을 가진 조현병 명칭은 신경계 혹은 정신의 튜닝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이라는 과학적 해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병명이 바뀐 후부터 환자에 대한 일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여전한데.
“언론 역할이 중요하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를 다루는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일이 적지 않다. 국내 주요 일간지의 정신질환 관련 기사 중 약 3분의 2가 사건·사고 기사였고 부정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다루고 있다. 객관적인 의학정보를 담거나 긍정적 측면에서 기술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이 앞장서 올바른 정신건강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 문제와 의료진 안전에 대한 문제가 동시에 대두했다. 해법은.
“이런 일들이 생기면 일반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더 강화된다. 그래서 오산이나 수원에서 정신병원 건립에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한 일들이 생긴 것이다. 결국 정신질환자들이 일반 국민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성기 증상이 있으면 빨리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기 치료를 받는 사람은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그리고 만성기 환자들엔 재활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 임세원 교수 사건도 결국 환자를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그 환자를 돌봐줄 가족도 환자를 책임질 수 없었고 아무도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루빨리 국가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있는 촘촘한 시스템 구축과 이를 위한 과감한 예산 투자가 필요하다.”
-조현병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나. 완치할 수 있는가.
“조현병에 관련된 유전자는 100개 이상이 된다. 그러나 아직 기전을 밝히기 어려운 상태다. 뇌영상술의 발달로 뇌 이상에 대해 많은 연구보고가 있지만, 역시 뇌 변화는 결과일 뿐 그것의 원인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진단과 관계없이 뇌 이상을 통해 정신질환을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을 통해 그나마 조금씩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완치 방법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조현병은 뇌 전반에 걸친 이상을 보이는데, 우리 뇌는 신경세포가 1000억개가 있고, 시냅스가 100조개 정도 있기 때문에 이것의 연결과 기능을 밝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