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중견 법관이 1심에서 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으로는 5번째 1심 무죄 선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14일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임 부장판사는 임종헌(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를 받고 2015년 3~12월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행동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날에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3명이 나란히 같은 법원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로부터 1심 무죄 선고를 받아냈다.
신 부장판사 등은 2016년 검찰의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이 청구한 각종 영장에 첨부된 사건기록을 통해 수사 상황과 향후 계획을 수집한 뒤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신 부장판사 등의 행동이 공무상 기밀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검찰 공소사실을 깼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 변호사가 특정 재판의 진행 상황을 법원행정처측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기밀 유출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까지 포함하면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5명이 모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범’으로 지목된 상태여서 법원의 무죄 판단은 향후 내려질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1심 판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줄줄이 무죄 선고가 나오면서 2018∼2019년 진행된 검찰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수사·기소가 모두 신기루였던 아닌가 하는 회의적 시각도 제기된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문재인정부 초기에 엘리트 법관들이 다 비난받고 법원행정처를 ‘악의 온상’처럼 규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적폐청산의 실체에 대해서 이성적 판단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