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세운 1m 높이 담이 방에 드는 햇빛을 막는 꼴이 됐다. 옆 블록 빌라는 ‘외부차량 주차금지’ 안내판을 주차장에 세우면서 반드시 ‘전면주차’를 해달라는 공지도 붙였다. 나갈 때 편의를 위해 후면주차하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뒤편의 창을 덮치는 탓이다.
조금 더 걸으니 옆 빌라 주차장과 맞닿아 오가는 차량 소음에 노출된 창문이 눈에 띄었다. 몇 블록 건너 발견한 건물의 창문은 불투명처리가 됐지만, 안쪽 빨래건조대에 걸린 수건을 알아챌 수 있어 사생활 노출 가능성도 보였다. 넓은 도로 인근이나 널찍한 간격으로 건물이 선 곳에서는 오후 3시를 넘고도 햇빛이 들어 앞서 살펴본 곳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지난 13일 서울 주택가를 한 시간가량 돌며 살핀 반지하방 풍경이다.
◆“반지하는 ‘아쉬운 잔고’의 대표 이미지…‘옥탑’ 말고 꼭대기 층에 살고 싶다”
2년째 서울 마포구의 반지하방에 거주 중인 20대 남성 A씨는 ‘반지하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가격이 저렴하다”고 짧게 답했다.
A씨는 “전에 살던 곳에서는 겨울철 기준 매달 가스비가 7만원이었는데, 여기 오니 4만원 정도로 낮아졌다”며 “가격이 싼 만큼 단점이 많아서 딱히 장점이라 말하기도 어렵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햇빛이 방에 들지 않고 ▲습도가 높아 곰팡이가 잘 생기며 ▲지은 지 오래돼 방도 좁다고 단점을 나열했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온 뒤, 영국 BBC가 극 중 배경이 된 반지하방을 조명하면서 ‘외형’이 어떤 이의 존재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탓에, ‘반지하 거주자’는 ‘가난하다’는 이미지와 결부될 가능성 있다던 남성 말도 언급했다.
A씨는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알아오지 않은 이상, 처음 보이는 면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 아니겠냐”고 기사 내용에 대체로 동의했다. 그는 “집, 옷, 자동차 등이 한 인물의 이미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에서는 반지하가 잔고가 아쉬운 이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A씨는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유명 아파트와 반지하라는 답변에 따라 상대방과 대화 온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도 봤다. 다만, “모든 반지하라고 다 같지는 않더라”며 “어떤 집은 작은 창문 하나만 있지만, 어떤 반지하는 저렴하면서도 나름 베란다 공간도 갖췄다”고 말했다.
결국 이러한 환경을 견줘 자신의 형편과 타협을 끌어낸다면, 반지하에서도 살만하다는 게 A씨의 추가 의견이다. 그러면서도 이는 어디까지나 ‘타협’일 뿐 ‘만족’일 수는 없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굳이 반지하에 살 이유가 없다”고 A씨는 강조했다.
반지하의 미래를 묻자 A씨는 “아파트가 많아져도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 같다”며 “대한민국에서 반지하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마지막으로 “살아보고 싶은 층이 있느냐”고 물었다.
“꼭대기 층에 살고 싶다. 아, 옥탑이 아니라 구름과 눈높이가 같을 정도의 고급 아파트를 의미하는 거다.”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반지하’만 아니었어도 더 자신 있었을 거라고
30대 남성 B씨는 몇 년 전 만났던 20대 여자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맴돈다.
“내가 반지하방에만 살지 않았으면, 오빠 앞에서 좀 더 자신 있었을 텐데.”
그때마다 B씨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여자친구를 달랬지만, 같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인지 종종 상대방 얼굴에는 우울함이 스쳤다고 한다. 그는 “반지하에 살든 어디에 살든 난 상관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당사자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운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터를 잘 잡은 것이었을까. B씨는 “반지하는 대부분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연상시키지 않느냐”며 “그 아이의 방은 무척 따뜻했고, 햇볕도 잘 들어 도무지 반지하 같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B씨는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그 아이의 입장이었다면 자존감이 다소 꺾였을 것 같기도 하다”고 상대의 마음을 짐작했다. 이어 “나중에는 반지하를 벗어나겠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 꿈이 부디 현실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했다.
같은 청춘의 페이지들을 만들었던 소중한 인연으로서 보낸 응원이라고 B씨는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설명했다.
◆29세 이하 거주·그리고 서울…반지하 최다 비율 항목
1970년대 처음 등장한 반지하는 산업화로 서울 등 대도시에 사람이 몰려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거주 공간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지하층 바닥에서 지표까지 높이가 천장까지의 3분의 2이상이었지만, 거주 편의를 도모하자는 등의 이유에서 규제가 바뀌어 2분의 1이상으로 완화됐다. 2003년 주차장법 개정 후 필수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로 1층에 주차장을 만드는 ‘필로티 건축물’이 증가, 이제는 다세대 등 주택용 건물의 반지하를 만드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5년마다 실시하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자료에서 반지하는 전체 가구의 1.9%에 해당하는 총 36만4000가구로, 2010년(51만8000가구·3.0%)보다 15만4000가구(1.1%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29세 이하의 반지하 거주비율이 2010년 4.9%, 2015년 3.0%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지역으로는 서울이 2010년, 2015년 모두 반지하 거주 비율이 8.8%와 6.0%로 1위를 기록했다. 앞서 사례를 언급한 A씨와 B씨 여자친구는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반지하를 ‘빈곤’과 직결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주거 형태의 하나로 확산했지만,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보듯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데다가 싼 집값으로 잠시 거주하는 형태일 뿐, 사회 계층의 하나처럼 여기는 건 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