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영어를 잘 못하거나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면 영국 이민을 제한하는 내용의 이민법 개정안을 내놨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이후 외국인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는 것이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내무부는 전날 EU 탈퇴에 따른 노동·이민 개혁 일환으로 이민 심사에 점수제 도입을 공식화하고 개정안 주요 내용이 담긴 10페이지짜리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영국 내무부는 이번 이민법 개정이 “영국 국경을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히 통제하고 EU의 ‘이동의 자유’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없앨 기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EU 탈퇴를 요구한 유권자들은 우리 산업계가 저임금 이민자들에 의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저렴한 EU 노동자의 시대를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EU 출신 노동자는 분야별로 평균 10∼20%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숙련공 기준은 낮아졌다. 학위가 없더라도 영국 정규교육과정인 ‘에이-레벨’(A-LEVEL)을 이수하거나 동등한 과정을 거쳤다면 인정된다. 숙련공 입국자 수에는 상한선을 두지 않고, 뛰어난 숙련공으로 인정받으면 정해진 일자리가 없어도 입국 가능하다.
가디언은 “외국인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지침이 일자리 감소와 공장 폐쇄 등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농업, 어업 종사자들과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보건업 종사자 대표 단체 ‘유니슨’은 “돌봄 및 치료 분야의 절대적인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산업계도 즉각 반발했다. 고용주들에게 EU 출신 저임금 노동자에 의존하지 말고 기술개발 등 투자를 확대하라고 압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톰 하들리 영국 채용·고용연합(REC) 정책국장은 “일자리 감소 등 혹독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정부가 생각하는 ‘저숙련 노동자’는 우리 기업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캐롤라인 페어바이른 영국산업연합 국장도 “이미 고용이 정체된 건설, 돌봄서비스, 요식업계 등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역시 비판에 나섰다. 노동당 소속의 다이애나 애벗은 “영어를 못하는 수학 천재가 있다면 그의 입국을 막는 게 맞는 건가? 그건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라며 “보수당이 만든 개정안으로 영국은 필요한 숙련 노동자들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계의 반발에도 집권 보수당이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개정 이민법은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