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둘러싼 한미 양국간 갈등이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대폭 증액’ 요구를 지속하며 우리측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한국인 군무원 급여 문제가 불거지며 논란이 증폭됐다.
이같은 분위기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정경두 국방부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 분담에 있어 미 납세자들에게 불공평한 부담을 지워서는 안된다”며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정 장관은 “분담금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해오고 있다”며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국방 당국간 회담에서 주요 의제가 아니었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공개적으로 다른 언급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총선 전까지 타결 쉽지 않을 듯
한미는 지난해부터 방위비분담금 협상과정에서 수차례 이견을 드러냈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해 11월 15일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방한했을 때 “한국은 부유한 국가이므로 더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조금 더 부담해야 한다”며 공개 압박에 나섰다.
주한미군사령부도 가세했다. 주한미군은 지난달 29일 “2019년 방위비분담금 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추후 공백사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음에 따라 한국인 직원들에게 4월 1일부로 잠정 무급휴직이 시행될 수 있다는 점을 사전 통보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미국의 증액 요구를 거부하면 피해는 한국인 군무원이 입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후 “무급휴직을 막기 위해 조건부로 인건비를 지난해 수준으로 먼저 타결하고 협상을 지속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제안에 대해 미국측은 수용 여부를 밝히는 않았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한미는 지난달 6차 협상에서도 분담금 총액 인상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7차 협상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양측이 원하는 총액 규모에서 차이가 커 타결이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군 안팎에서는 주한미군 한국인 군무원 무급휴직이 시작되는 4월 이전 타결 및 비준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인건비 선(先)타결’ 카드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 이전에 방위비분담금 협상 대표단을 통해 미국쪽에 제안된 상태지만, 미국은 수용 여부에 답하지 않은 상태다.
회담 직후 정 장관은 미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주한미군 자체 운영유지 예산 전용이나 방위비 분담금 항목 중 인건비만 우선 타결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제안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총액 대폭 인상’을 고집하면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내 지한파들이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 기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협상을 타결한다 해도 국회 비준이 문제다. 지난해 방위비분담금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는데 50일이 넘게 걸렸다. 지난해의 사례를 적용하면 비준 시점은 4월 총선과 맞물린다. 분담금 대폭 인상에 부정적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폭 인상된 분담금을 쉽게 비준할 가능성은 낮다. 재선 켐페인 중인 트럼프 대통령도 공약사항이었던 ‘동맹 부담 늘리기’를 관철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로 물러서기 힘든 국면인 셈이다. 무급휴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아지는 대목이다.
◆미국이 韓 보는 시각 달라졌나
동맹의 안보부담을 늘리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유럽국가들도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고, 한국도 지난해 증가율(8.2%)보다 높게 분담금을 책정, 미국 요구를 충족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요구했던 6조원 안보다 낮지만, 여전히 상당히 높은 총액을 제시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측 의견과 다른 언급을 공개적으로 하고, 군무원 무급휴직을 대비하는 모습은 기존 한미동맹 관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정보 소식통은 “중국 변수가 작용한 것으로 안다”며 “미국 정보분야에서는 현 한국 정부와 중국과의 관계를 스텔스 동맹(stealth alliance)이라 부르는 경우가 눈에 띈다”고 전했다. 스텔스 동맹은 한미관계처럼 공식적인 조약에 기반한 동맹이 아니다. 이심전심으로 이뤄지는, 암묵적이지만 끈끈한 관계에 가깝다. 연애에 빗댄다면 사랑고백이나 프로포즈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둘이 사귀는구나’라고 인식하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중국에 기울고 있다고 트럼프 행정부가 인식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같은 인식은 지난해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는 일본이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며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했으니, 우리도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류하는 지소미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지소미아 종료는 한일 관계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과 동맹의 안보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안보적 도전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왜 그랬을까.
정보 소식통은 “러시아와도 유지하는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는 한국의 결정을 미국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편을 들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소미아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맞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기반이며, 여기서 이탈하는 것은 친중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며 “방위비 대폭 증액이나 사드 정식 배치 요구 등은 일종의 ‘군기잡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 차이를 뒤로 하고, 지역 안정과 안보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지역에 던진 것”이라며 “지소미아가 없으면 우리가 그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당시 주한미군은 그가 언급한 ‘우리’는 ‘한미일’, 잘못된 메시지의 수신국은 ‘북중러’를 뜻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미 국방당국 고위 관계자들이 공개 석상에서 서로 반박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인 이례적이다. 그만큼 갈등이 심해진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한미관계는 안보 분야가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을 잘 풀어나가는 노력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