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에서 대구로 오신 분한테 주변 분들이 ‘유서 쓰고 가라’ ‘아직 살아있냐’고 얘기한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쉬고 싶으면 대구 한 번 다녀오라는 말을 공공연히 나눈다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속상합니다.”
대구에 사는 김모(34)씨는 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와 대구를 둘러싼 날카로운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김씨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에는 ‘상황이 이런데 대구를 바이러스 취급하지 말라는 건 억지다. (대구 사람은) 당연히 잠재적 보균자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김씨는 “대구 사람들도 혹시 자기가 감염되진 않았을까, 무증상 감염자라 주변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많이 걱정하고 조심하고 있다”면서 “사레만 들려도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고, 혹시라도 지금 걸리면 특정 종교인으로 몰릴까 무섭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하면서 대구 시민들에게 혐오의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살아?’라고 묻고, 타고 있는 사람이 ‘대구’라고 말하자 휠체어를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그림 등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발병률이 높거나 감염원인을 제공한다고 집단 전체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며 “방역상 이유나 정당성이 없는 행위는 혐오나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달 22일 “일부 언론이 ‘대구 코로나’ 등 자극적이고 대구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무분별한 용어 사용이 계속된다면 대구 시민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법적 대응 등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지역 방문 자체를 꺼리거나 빗장을 걸어 잠그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항암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본인을 한 달에 한 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여섯 살 아들을 둔 엄마라고 소개했다. 이 청원인은 “서울의 모 병원에서 미리 정해져 있던 항암치료를 해줄 수 없다는 청천벽력의 말을 들었다”면서 “대구·경북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본관 출입이 불가하다. 대구봉쇄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많은 주민은 봉쇄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대구 출신 김모씨는 상사에게 “고향 집에 보고 없이 다녀오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대구에 사는) 노부모가 걱정되지만 마스크 한 장도 구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대형마트에 과일을 공급하는 경북개발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식이 줄면서 대형 매장에 과일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이에 공급을 늘려 달라는 주문이 몰리고 있지만 현지에서 과일 수송 차량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거래하던 운송업체도 기사들이 대구·경북은 위험하다며 수송을 거부해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기사를 찾고 있어 전시 상태 같은 느낌마저 든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무조건 특정 지역을 기피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닌 배려와 상생이 강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한 셰어하우스 업체는 다인실에 입주하기로 한 대구 출신 입주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코로나19 잠복기가 될 수 있는 2주 동안 호텔을 제공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힘내요대구’ 해시태그 운동과 각계각층에서 보내는 물품과 성금 등 대구를 향한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유지혜·배소영 기자, 안동=전주식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