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재정경제원에 출입하던 시절 겪은 얘기다. 당시 재경원 금융정책실 국·과장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였다. 기자들의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했고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를 얕볼 정도로 자존심도 셌다. 그런데 시중에 달러 가뭄 사태가 발생하자 그들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외화 차입과 수급 상황을 몰라 허둥지둥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외환위기가 증폭됐지만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관료의 무능은 위기가 닥쳤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그들은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에 둔감했고 국내금융시장의 실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근 한 달간 이어진 마스크 대란에 쩔쩔매는 정부의 모습을 보니 관료의 탁상행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올 초부터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자 중국 다이궁(보따리상)들이 대거 국내에 몰려와 마스크 사재기에 나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앞다퉈 역병에 시달리는 중국을 돕겠다며 마스크 기부 행렬에 합류했다. 그 와중에 투기세력까지 매점매석으로 돈벌이에 가세하니 마스크 품귀 현상은 심해지고 가격은 폭등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야 수출제한 등 뒷북 처방을 내놓았지만 폭주하는 마스크 수요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꼬일 대로 꼬인 마스크 생산·유통 실상에 무지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질책한 것도 모자라 그제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책상에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라”고 호통쳤을까.
이게 끝이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정치·경제 논리에 집착하다가 방역에 소홀해 코로나19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중순 코로나19 감염이 잠시 잠잠해지자 문 대통령은 경제계 간담회에서 “코로나19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미국 뉴욕타임스까지 이 발언 이후 신규 감염자가 속출해 정치적 반발에 직면했다고 지적하면서 “대가가 큰 오류”라고 꼬집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같은 날 “중국의 환자가 하루에 2000명 이상 생기고 있다.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경제 충격 최소화에 급급해 방역 사령탑의 판단을 무시한 혐의가 짙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