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남측을 위로하는 내용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왔다고 5일 청와대가 밝혔다. 김 위원장의 친서에는 코로나19 위로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한 입장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문 대통령도 감사의 뜻을 담은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며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겠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남북 대화가 1년 넘게 단절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는 느닷없어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후 남북관계를 경색시켜왔다. 우리 정부와 문 대통령을 원색비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남북 방역협력’을 공개 제안한 다음날 북한은 발사체 2발을 쏘아올려 우리 정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김 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청와대를 향해 “완벽한 바보”, “겁먹은 개” 등의 막말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진행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시점에 친서가 전달된 것이다. 북한이 강온책을 써가며 남한을 길들이려한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방역협력 제안을 수용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1년 가까이 철저히 배제하고 있던 남한에 친서를 보내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친서에는 김 제1부부장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언급했던 부정적 정세 인식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윤 수석은 “김 위원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혔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번 친서에서 발사체 발사와 김 부부장의 담화 등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상황 설명이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렇지 않다. 김 부부장의 얘기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미 대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된 상황과 김 위원장의 입장을 설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김 부부장의 비난 담화 다음 날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낸 것은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가 군사훈련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반발하면서도 큰 틀에서는 남북협력을 이어가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이번 친서 교환을 계기로 국제사회를 통한 코로나19 관련 보건분야 협력을 중심으로 남북협력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북한은 최근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의학적 감시 대상’이 약 7000명 발생했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몰린 데다 관광사업이 중단돼 외화난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낙관론이 될 수 있다.
김달중·백소용 기자 da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