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전투력을 유지하려면 실전적인 훈련이 필수다. 9.19 남북 군사합의와 북한 비핵화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연합훈련이 중단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을 유지하려면 전국 각지에 있는 훈련장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소음 피해 등을 주장하며 훈련장을 비롯한 군사시설을 혐오시설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군사시설을 폐쇄 또는 이전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군 당국이 갈등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일선 부대의 훈련장 사용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가 강조하는 ‘평화를 위한 안보’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시끄럽고 위험하니 폐쇄하라”
현재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사격장과 훈련장은 3100여 개에 달한다. 이 시설 중 상당수가 소음과 교통체증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나 토지주의 폐쇄 및 이전 요구에 직면해있다.
6일 군 당국에 따르면 인천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2월 육군 제17사단이 사격훈련 중인 인천 서구 공촌동 미추홀사격장(2만6446㎡)에 무단 침입해 훈련을 방해한 A씨 등 5명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지난 1월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군부대의 고발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A씨 등은 지난해 2~3월 3차례에 걸쳐 사격훈련이 예정된 미추홀사격장에 침입해 훈련을 중단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사격장 길목에 쇠말뚝을 박아 군부대 이동을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사격장 인근에서 사격장 폐쇄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사격장 인근 토지 소유 회사 관계자들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해당 부대는 “사격장은 2003년부터 운영됐고 주민 피해나 민원 접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사격장은 주민 거주지역과 떨어져 있어 실제 사격 소음도 잘 들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사격장 주변에 2가구가 살고 있는데, 소음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을 알리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며 “화합 차원에서 접촉도 하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사격장 침입 등이 있어 고발했다”고 말했다. 2018년 사격장 인근 토지를 경매로 취득한 A씨 등이 지난해 민원을 제기하고 시위를 벌여 군은 60일 정도 훈련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격장 인근 토지를 매입한 뒤 폐쇄 요구를 하는 것을 두고 군 안팎에서는 개발 이익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육군은 2024년까지 전국 200여개의 시군별 대대급 훈련장을 40개의 연대급 훈련장으로 개편하는 등 사격장과 훈련장 통합 작업을 추진중이다.
광역시 소재 훈련장 중 상당수는 도시화로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는 추세다. 인구밀집지역과 인접한 통폐합 대상 훈련장이라면 개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미추홀사격장은 통폐합 대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곳이다. 군 관계자는 “방음차단벽을 세워 소음 피해를 막고 일부 토지를 매입하려고 추진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나 민원을 통해 군사시설 조정 계획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훈련장 거취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면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이를 지렛대 삼아 기존 통폐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훈련장을 이전 또는 폐쇄 대상지로 변경하면, 기존에 인근 토지를 매입했던 사람들은 개발 호재에 따른 시세 차익을 얻게 된다.
이같은 행위는 훈련장 통폐합 계획과 우선순위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군 내부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4년 6월 감사원은 국방부시설본부 군무서기관으로 근무하다 2010년 퇴직한 B씨가 경기도 파주시 일대 군 징발지 등의 정보를 민간 부동산개발업체에 넘긴 사실을 국방부 감사를 통해 적발했다.
◆주민과 상생하는 방안 찾아야
군 사격장과 훈련장을 둘러싼 군과 인근 주민간 갈등이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김병철)는 경기 양주시 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사격장 사용 금지와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주민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양주시 일대에는 1968년과 1979년 육군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 자동화 사격장이 설치됐다. 2013~2017년 연간 147~178일 동안 사격훈련이 이뤄졌다. 인근 주민들은 “소음으로 청각장애, 신경쇠약, 정서불안, 학습방해, 영업피해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사격장 사용을 금지하고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14억 1457만원과 사격장이 퇴거할 때까지 매월 각 1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주민 대표와 정부, 소음감정인의 측정 결과를 토대로 사격장 소음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준은 아니라며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측정된 평균 등가소음도는 62.1㏈, 최고소음도는 79.4㏈로 사회통념상 유해성을 참는 정도인 수인한도 중 등가소음도 69㏈과 최고소음도 100㏈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박병태 부장판사는 강원 양구군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소송 대상이 된 곳은 양구군 노도과학화 전투훈련장(구 태풍사격장)으로 주민들은 2016년 “소음으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현장검증 결과 사격훈련시 주민들의 집에서 측정한 1시간 동안의 등가소음도는 49.1dB~61.6dB, 최고소음도는 72.2dB~91.8dB로 수인한도 아래였다”며 “주민들이 입은 피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수인할 것으로 기대되는 한도를 넘어섰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소송은 군과 주민 모두에게 민군 관계 악화와 행정력 낭비 등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긴다. 시세 차익을 노린 토지주의 요구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할 수 있지만, 훈련장 인근 주민들은 군부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다. 소송에 이르기 전에 갈등을 치유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거론되는 방안이 경제적 보상이다. 훈련으로 인한 피해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지 않다면, 피해 보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에서 소음 피해 등에 대한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경제활동에 의한 수익 증대를 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방 소재 훈련장 인근 주민들에게는 훈련장 내 산지의 독점출입권을 보장해 산나물, 약재 채취 등을 허용하거나 안전구역에서의 영농행위를 허락하는 방안이 적절하다는 평가다. 주민 다수가 고령자로서 안보관광이나 복지시설 관리 등이 쉽지 않은 만큼 특별한 운용능력이 필요치 않은 산지 독점출입권은 군과 주민들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 지역 훈련장은 실내훈련장으로 전환해 소음 피해를 방지하면서 복지시설을 추가 건설해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등의 조치가 거론된다.
군 훈련장은 고도의 공익성을 띄는 시설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가 이뤄졌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국가이며 정전협정이 유지되고 있다.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한 국가다. 훈련장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다만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했던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만큼 훈련장과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개발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이용되지만 않는다면, 군과 주민들의 상생 정책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군 당국의 정책적 노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