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보툴리눔톡신) 도용 여부와 관련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ITC)를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공방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먼저 공세를 취한 쪽은 원고 측인 메디톡스다. 지난 4일 ITC 소속 변호사(Staff Attorney)의 의견을 공개했는데, 보도자료를 통해 이 변호사가 ITC에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이 메디톡스의 주장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에서 배심원과 같은 위치에 있으며, ITC 재판부의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게 메디톡스 측 설명이다. 재판부의 최종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인 셈이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 변호사 개인의 의견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ITC 소속 변호사의 의견은 행정판사에게 원고나 피고가 주장하는 의견 이상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그 요지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메디톡스는 미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이해 부족을 십분 활용해 본인이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반발했다.
이에 세계일보는 ITC 소속 변호사의 기능과 소송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전직 ITC 위원장이자 소송에서 최종 판결에 참여하는 ITC 커미셔너를 9년 이상 역임한 폴라 스턴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7일 서면 질의를 보냈고, 8일 답변을 받았다.
현재 ITC 위원장에서 물러나 스턴그룹 창립자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인터뷰를 통해 “ITC 소속 변호사의 의견은 행정판사의 결정에 어떤 특별한 영향력도 지니지 않으며, 중립적이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이는 메디톡스의 보도자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래는 폴라 스턴 전 위원장과의 서면 인터뷰 전문이다.
◆폴라 스턴 “ITC 소속 변호사(Staff Attorney)의 견해, 행정판사 결정에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다”
-한국 독자을 위해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제 이름은 폴라 스턴입니다. 저는 현재 스턴그룹의 창립자이자 사장으로,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비즈니스와 정치 및 기술 정책 이슈에 대해 기업이나 조직에 조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ITC 위원장을 역임했고, 9년 이상 ITC 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재직 시절 광범위한 산업 문제와 관련된 1000건이 넘는 ITC 사례를 분석하고 표를 행사했습니다. 당시 저는 미 행정부에서 상위 두번째 직책을 수행하는 여성이었습니다. 무역정책 및 협상에 관한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미 법무부 독점 금지부의 국제경쟁 정책 자문위원회 공동 의장, 미 수출입은행의 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저는 미국 가우처대 학사와 하버드대 지역학 석사, 터프츠대 법학과 외교학 대학원에서 국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의 소속 변호사(Staff Attorney)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OUII는 소송에서 원고, 피고와 함께 제3자의 역할을 합니다. 소속 변호사(Staff Attorney)의 역할은 ITC 행정판사가 소송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보통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돕습니다.”
-이 변호사가 ITC 행정판사의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줍니까?
“OUII 소속 변호사는 행정판사의 지침을 받아 같이 일하는 것이 아니며, 그 견해는 행정판사 또는 ITC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면 소송에서 또 다른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변호사의 견해는 행정판사의 결정에 어떤 특별한 영향력도 지니지 않습니다.”
-OUII 소속 변호사가 미 사법체제에서 배심원의 역할과 비견될만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합니까?
“전혀 아닙니다. 배심원의 역할과는 전혀 다릅니다. 미국 (사법)체제에서 배심원의 평결은 법원에 구속력을 지니며, 뒤집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ITC 소송에서는 OUII 소속 변호사의 역할은 증거 제시를 돕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 주장이 ITC 판사나 위원회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미국 사법체제에서 배심원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의사 결정자로서 사건에 어떻게 접근할지 지시를 받습니다. 반면 ITC 소송에서 OUII 소속 변호사의 의견은 행정판사의 의사결정에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아울러 편파성이 없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ITC 행정판사가 OUII 소속 변호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행정판사는 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를 근거로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을 할 것입니다.”
-예비판결은 ITC의 최종 판결입니까?
“아닙니다. 행정판사의 예비판결은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full Commission)의 심사대상이 됩니다.”
-6명의 위원 중 한 명으로 일하신 적 있습니까?
“네. 9년 이상을 위원으로 일했고, 그후 ITC의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전원위는 행정판사의 예비결정과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까?
“네. 위원회는 자주 행정판사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합니다.”
ITC는 원고 메디톡스와 엘러간, 피고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로 나뉜 이번 소송과 관련해 6월 예비 판결을, 10월 최종 판결을 각각 내릴 계획이다.
◆실적 발표 직전 갑자기 美 ITC 변호사 의견 밝힌 메디톡스…왜?
대웅제약와 더불어 제약업계는 메디톡스의 ITC 소속 변호사(Staff Attorney)의 의견을 공개한 시점을 두고도 설왕설래를 벌인다.
메디톡스는 지난 4일 오후 실적발표를 앞두고 직전인 당일 오전 전격 공개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악화된 실적에 더하여 대표이사에 대한 압수수색, 메디톡스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주요 품목인 메디톡신에 대한 행정처분 가능성 등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마치 미 ITC 소송에서 승소한 것처럼 보이려고 한 것 같다”며 “ITC 소속 변호사 개인적인 의견을 마치 공식적인 것처럼 과장하여 발표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공장장 구속, 대표 압수수색, 품질 논란 등 겹악재로 신음하는 메디톡스
실제로 지난 3일 검찰은 메디톡스의 서울 삼성동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정현호 대표이사의 휴대전화, 개인 PC, 일지 등 주요 증거물을 확보하였다는 다수의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미 생산본부장을 구속한 검찰이 실무진뿐만 아니라 대표이사를 직접 겨냥할 정도로 사안이 중대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4일 메디톡스가 발표한 공시 역시 심각성을 더한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은 256억8875만원으로 전년 대비 69.9%이 급감,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258억2789만원으로 63% 줄었다.
이튿날 삼성·대신·NH·한국·하나 등 국내 유수의 증권사들은 보고서를 통해 일제히 메디톡스의 목표가를 하향 조정했다. 공통적으로 정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과 보톡스 균주 소송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그 이유로 지적하였다. 메디톡스는 게다가 ▲메디톡신 폼목허가 과정에서 서류 조작 및 안정성 시험 기록 허위작성 의혹 ▲원액 생산과정에서 제품 오염 가능성 의혹 ▲제품 생산과정에서 기록 조작 의혹 ▲‘제조 및 품질관리요약서’를 조작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가출하 승인을 받은 의혹 등을 받고 있어 위기에 처해있다.
◆'약품 불법유통' 의혹 메디톡스…주주들 손배줄소송 예고
실제로 지난 5일 주주 등은 미검증 약품을 불법 유통했다는 의혹을 받는 메디톡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예고했다.
법무법인 오킴스는 당시 “최근 검찰이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메디톡스 생산본부장을 구속한 데 이어 정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진행했다”며 “피해자들의 요청에 의해 메디톡스와 주요 임원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또는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디톡스는 보툴리눔톡신 ‘메디톡신’을 허가 전 불법 유통하고, 생산 멸균작업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또한 실험용 무허가 원액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고, 일부 제품이 품질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기준을 충족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오킴스는 “이 같은 혐의는 주사제의 세포성분 바꿔치기 혐의로 최근 대표이사가 구속까지 된 이른바 ‘코오롱 인보사 사태’와 매우 흡사한 범죄행위”라며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위법성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청주검찰청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고, 더 나아가 보건당국의 허가취소 처분도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그로 인한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와 환자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범행은 일부 직원의 일탈행위를 넘어 회사의 영리추구를 위해 정 대표를 정점으로 조직적·전사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불법행위일 가능성이 높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불법행위에 상응하는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