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방 빼라’ 민원 논란 속에는…소통 부족이 있었다

업체 측 “요청은 사실이나 방 빼라고 말씀드릴 이유는 없다”

“요청한 건 사실이지만, 저희가 일방적으로 ‘방을 빼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죠….”

 

전화 너머 들려온 목소리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1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경남 창원의 한 호텔 웨딩업체 관계자 A씨는 “변명은 하지 않겠다”며 “많은 부분이 걱정이 되어서 이동에 대한 말씀을 드린 건 맞다”고 밝혔다.

 

논란은 전날(12일) ‘창원 어느 호텔의 웨딩업체가 의료진 투숙에 반발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불거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호텔에 투숙한 인근 병원 의료진이, 같은 건물에 있는 웨딩업체 반발로 불과 며칠 만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야 한다는 거였다.

 

지난 1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웨딩업체를 향한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이 시국에 의료진을 응원하지 못할망정 쫓아내느냐는 질타가 쇄도했다. 일부 누리꾼은 업체를 소개한 포털 페이지를 찾아가 별점 1점을 매기고, 관계자를 지적하는 댓글도 여럿 달았다. 이 업체에는 항의전화까지 빗발쳤다.

 

웨딩업체와 호텔 측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말은 대략 이렇다.

 

지난 5일, 이 업체는 호텔 측으로부터 인근 병원 의료진 약 60명이 투숙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호텔은 객실을 담당하는 곳과 조식과 웨딩을 맡은 업체로 나뉘며, A씨가 몸담은 업체는 호텔 측에 임대료를 내고 투숙객을 위한 조식 제조와 웨딩사업을 하고 있다. 이날 업체는 3월말까지에 대한 식자재 분량을 발주하는 것으로 호텔 측과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6일) 호텔 관계자를 찾아간 A씨는 전날과 다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당황했다고 한다. 건물 내 동선이 의료진과 일반 이용객이 겹칠 수 있어서, 안전을 우려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물으러 갔다가,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의료진이 머문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특히 이러한 내용이 담긴 호텔과 병원의 계약서가 있다는 것도 이날 알았다고 A씨는 말한다. 계약서를 쓸 때 웨딩업체 측에서는 누구도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부에 보고했던 것과 내용이 달랐던 탓에 일단 A씨는 호텔 측의 양해를 구하고, 오후 5시쯤 계약서 사진을 찍어 임원에게 전달했다.

 

A씨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호텔과 병원이 쓴 계약서가 있었다”며 “우리에게는 그런 말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당연히 알았지만, 너무 기간이 길어지면 이미 미뤄둔 예식의 재조정 등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이러한 내용을 여쭤보려고 갔다가 계약서를 알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의료진분들이 투숙만 가능한 인근의 다른 호텔로 이동을 해주시는 게 어떨지 호텔 측에 요청을 드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서에 대한 호텔 측의 입장은 이렇다.

 

3월말까지 정도로 기간을 대고 병원과 이야기를 했고,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식자재 발주 사항을 업체에 전달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계약서가 작성될 때는 코로나 사태의 종식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재난 사태 종료 시까지’로 기한이 적혔다.

 

호텔 측도 할 말은 있다.

 

호텔 관계자 B씨는 통화에서 “우리 모두 봉사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설령 3월 말이든 재난 사태 종료 시까지든, 이번 일에서 아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계약서에 대한 내용은 3월말이 지나고 나서 업체가 호텔 측에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업체 측이 의료진의 조식을 위해 준비해둔 식재료. 업체 측 제공

 

결국 호텔 측과 업체의 부족했던 소통이 의료진 투숙에 대한 엇갈린 의견으로 이어지면서, 이번과 같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업체가 의료진이 머무는 데 반발한 것으로 외부에 비치면서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는 웨딩업체를 향한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코로나19 사태가 빚어낸 또 다른 안타까운 일이었다.

 

A씨는 “(의료진분들에게) 방을 빼라,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며 “나름 설득을 한다고 말씀드린 건데, 여러모로 민감한 사안인 탓에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우리도 (그런 말을 한 데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일의 이면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소문이 돈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호텔에 ‘병원 관계자’들이 묵는다던 말은, 곧 ‘확진자의 가족’으로 바뀌었고, 이후 가족이란 말은 빠진 채 ‘확진자가 호텔에서 자가격리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A씨는 전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