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초대형방사포를 낮게 쐈을까 [박수찬의 軍]

일반적으로 매년 3월이면 군 당국은 북한 지역 동향을 관찰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는 시점인 3월을 전후로 북한군이 대규모 화력훈련이나 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지난 2일과 9일 화력타격훈련의 일환으로 초대형방사포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2일에 쏜 2발의 방사포는 고도 35㎞, 사거리 240㎞를 기록했으며, 9일에 발사된 방사포는 고도 50㎞, 사거리 200㎞로 탐지됐다. 

지난해 9월10일 초대형방사포 사격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발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노동신문

이같은 결과를 놓고 군 안팎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발사된 초대형방사포는 380㎞ 이상의 비행거리와 97㎞의 고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비행거리가 짧아졌고 고도도 낮아졌다. 장거리 미사일을 높이 쏘아올리는 고각발사를 해왔던 북한이 왜 낮은 고도로 짧게 방사포를 발사했을까.

 

◆‘어디에 어떻게 쏴야 할까’ 고민하는 북한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들은 다양한 탄도 비행 시험을 통해 한미 연합군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이언 윌리엄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방어프로젝트 부국장은 9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달 두차례 발사 모두 발사 각도가 낮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짧아진 비행거리와 낮은 고도 등을 고려하면, 낮은 발사각으로 발사하면서 다양한 궤도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또다시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보도한 김 위원장의 훈련 지도 모습. 연합뉴스·조선중앙TV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회피하는 전술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독일의 미사일 전문가 마커스 실러 박사도 “다양한 탄도 궤적 실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미사일을 자체 개발할 때 꼭 필요한 시험”이라고 말했다.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요격거리는 200㎞, 고도는 40~150㎞다. 북한이 이달 들어 쏜 초대형방사포 고도는 사드의 최저 요격고도에 해당된다. 사드로는 요격하기가 쉽지 않다. 패트리엇(PAC-3)이나 M-SAM이 있으나 한반도의 짧은 종단 거리 때문에 요격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며 요격 기회도 한 번 뿐이다. 

 

초대형방사포 3~4발을 단일 표적에 쏘면 PAC-3과 M-SAM의 요격 시도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한 발만 발사할 수 있는 스커드 미사일을 연속발사가 가능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로 대체하려는 것, KN-23과 대구경조종방사포가 풀업 기동(Pull-up:정점 고도에 이른 뒤 하강하다 다시 위로 솟구치는 기동) 기능을 갖춘 것도 한미 연합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돌파하겠다는 북한의 집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노동신문이 공개한 초대형 방사포로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탑재된 4개의 발사관으로 구성된다. 연합뉴스·조선중앙TV

이같은 시도가 성공하려면 남한 내 주요 표적 타격 계획을 미리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각 표적에 따른 방사포 발사 위치와 각도, 비행궤적 등이 포함된다. 외국에서 검증된 방사포를 도입했다면 생략할수도 있지만, 북한이 자체 개발한 실제 발사를 통해 확인을 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지속되는 초대형방사포의 잇단 발사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남은 변수는 초대형방사포의 기술적 완성도다. 방사포는 빠른 시간 내에 연발로 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초대형방사포는 연속발사 부분에서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다. 지난해 8월 첫 발사 이후 발사간격은 17분→19분→3분→30초→20초로 짧아지고 있지만 일반적인 방사포의 발사간격은 이보다 더 짧다. 

 

특히 지난 9일 발사에서 처음과 두번째 발사 간격은 20초였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발사 간격은 1분 이상이 걸렸다. 4발을 발사했으나 1발이 실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속발사 능력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초대형방사포시험사격을 또다시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11일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이 20초 간격으로 초대형방사포 4발을 발사해 한미 연합군의 PAC-3나 M-SAM의 요격 시도를 뚫고 지상 표적을 타격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방사포 1발의 파괴력은 수류탄 수준에 불과하지만 일시적으로 시설 사용이 중단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현대 전장 상황에서 북한은 시간적 여유를 얻지만 한미 연합군은 심리적 공포에 휩싸인다. 북한으로서는 저렴한 방사포로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얻는 셈이다.

 

◆재래식 전쟁 능력 축적하는 북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직후 북한은 대구경방사포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300㎜ 방사포와  대구경조종방사포, 초대형방사포를 만들었고 240㎜ 등 기존 방사포도 성능개량을 지속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핵과 탄도미사일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핵보유국의 전략적 움직임이다. 핵보유국들은 핵무기를 개발한 뒤 국지적인 무력시위나 도발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핵을 보유한 국가를 상대로 전면전을 시도할 가능성은 없다. 강경대응을 해도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핵개발에 성공한 국가들이 재래식 전력증강에 열을 올리는 것도 국지도발이나 무력시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북한군 방사포들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방사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62년 핵개발을 본격화한 인도는 1974년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후 파키스탄이 핵개발에 나서자 인도는 1987년 40만명을 동원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압박했다. 인도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파키스탄은 핵개발을 가속화해 1998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양측은 2000년대 이후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빚고 있으며,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잠수함, 전투기 등 재래식 전력을 확충하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 미국의 선제 공격에 맞설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을 갖춘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 확보다. 과거 북한은 휴전선 일대에서 국지도발을 일으켜 한반도에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9.19 남북 군사합의로 휴전선 일대에서의 국지도발은 할 수 없게 됐다. 

 

남은 방법은 휴전선 이남의 수도권 주요 시설에 대한 위협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공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해 한미 연합군을 견제하는 것이다. 초대형방사포 4발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TEL)들이 북한 내륙 지역에서 움직인다면, 한미 연합군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미사일방어체계가 동시에 쏟아지는 북한 방사포탄을 100% 요격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1발이라도 수도권에 떨어지면, 극심한 공포와 혼란이 발생한다. 이는 한미 연합군의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북한군 자주포들이 열병식을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조선중앙TV

9.19 남북 군사합의로 휴전선 일대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 장악을 위한 북한의 시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핵무기를 앞세워 한미 양국을 압박하던 방식이 재래식 무기개발을 통한 대남 위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의 움직임을 단순한 훈련이나 방위력 증강으로 해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