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 제한과 관련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제20대 국회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자동 폐기될 상황에 놓이면서, 입법 여부를 둘러싼 관련 업계의 ‘물밑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입법을 촉구하는 입장인 세무사업계는 법관 출신인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겨냥해 “변호사를 다시 개업할 수 있어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 한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법안 통과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법사위원들에게 ‘전방위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변호사업계는 “이번 개정안은 세무사업계의 의견만 과도하게 반영됐다”며 위헌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 두 업계 간 진통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되 세무사법에 명시된 업무범위 8가지 중에서 주요 업무인 △회계장부작성(기장) △성실신고 확인 등 2가지를 제외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제한적 허용’과 ‘전면 허용’이란 의견이 갈려 계류 중이다. 제20대 국회가 끝나는 오는 5월까지 결판을 짓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1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회원 수가 1만3000여명에 달하는 한국세무사회는 최근 회원들에게 보낸 내부 공문을 통해 여 위원장을 작심 비판했다.
원경희 한국세무사회장은 해당 공문에서 “여 위원장은 총선에 불출마해 올해 6월 이후 변호사를 다시 개업할 수 있다. 지금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 위원장이 향후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두고 입법을 막으려 든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원 회장은 이어 여 위원장이 이달 초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도 직권으로 법사위 통과시킨 점을 거론하며 “국회법과 법사위 관례를 무시하고 타다 금지법을 처리했다. (반면) 세무사법은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세무사회는 공문에서 법사위원인 미래통합당 김도읍·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법률안 의결 권한이 있는 법사위원과 친밀한 인연이 있는 회원은 꼭 연락을 달라”고 ‘물밑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여 의원실 관계자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대법원과 법무부의 반대의견이 있어 조율하자는 것인데, 세무사회의 주장은 명백한 인격모독”이라며 “법적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업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의 세무대리에 대한 ‘전면 허용’을 주장하면서 국회 계류 중인 개정안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도 반한다고 맞서고 있다.
헌재는 2018년 4월 “변호사이자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자의 세무대리를 금지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법무부도 지난달 개정안에 대해 “헌재 결정에 부합하도록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 전부를 허용하라”는 의견을 내 지원 사격했다.
대한변협은 국회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지난 1월 변호사 수백 명을 세무당국에 세무사로 등록 신청하는 등 법안 폐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개정안은 세무 업무 중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제외해 사실상 세무대리의 전면 금지”라며 “세무 업무는 세법에 근거한 것이라 변호사가 맡는 게 합리적이다. 법률 전문가들이 세무 업무를 자유롭게 하면 수임료 인하와 함께 질 높은 법률 서비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