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개혁가 조광조가 부활했다. 사후 501년 만에 그를 불러낸 이는 열린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다. 그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 신설한 검찰개혁 추진단장으로 활동하다 연초에 사표를 냈다. 황씨는 “‘조(조국)’를 생각하면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른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유교적 이상정치를 펴려다 역모로 몰려 죽은 조광조를 조국에 빗댄 것이다.
황씨의 궤변은 조국 지지자들의 사고를 대변한다. 이들은 조국을 조광조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추앙한다. 둘 다 명망 있는 학자 출신이고 급진 개혁가라는 점을 들먹인다. 그런 공통점이 없진 않다. 하지만 합리적 주장이 되기 위해선 공통점과 상이점을 함께 살피는 균형감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질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양과 소는 같은 동물이 된다. 둘 다 발이 4개이고, 뿔과 털이 있고, 되새김질을 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결론에 도달하려면 다른 점도 저울에 올려야 한다. 우선 조광조는 자기 이익보다 도덕을 앞세웠으나 조국은 이익을 위해 도덕을 버렸다. 언행일치를 실천한 조광조와 달리 조국은 언행 모순의 위선자였다. 조국은 개천에서 붕어와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소리치면서 자기 자식은 용으로 만들려고 반칙을 일삼았다. 조광조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스스로 개천에 뛰어들었다. 조국은 소인이고 조광조는 군자다.
개혁은 고칠 개(改)와 가죽 혁(革)이 합쳐진 말이다. 개는 자기 몸을 친다는 뜻이고, 혁은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뽑고 무두질한 가죽을 가리킨다.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개혁이고, 그 출발은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다. 조국은 남에게는 철퇴로 내리치면서도 자기에겐 솜방망이로도 치지 않았다. 가짜 개혁이다.
조광조가 꿈꾼 세상은 도덕이 지배하는 왕도정치였다. 그러나 조국은 우리 사회의 도덕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대통령은 그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한다. 조국 추종자들이 지향하는 곳은 왕도인가, 패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