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추미애 “n번방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빚은 참사”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촬영한 뒤 텔레그램방에 공유한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가운데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4일 “그간에 사법적용이 미온적이었음을 반성 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 대응 방침에 대한 브리핑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추미애 “(n번방 사건에)우리 딸들의 미래가 있겠냐는 목소리 나와”

 

추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고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n번방 사건으로)디지털 성착취 관련 우려가 큰 상황에서 우리 딸들의 미래가 있겠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n번방 사건을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 책임을 못하고 미온적인 형사처벌과 대응으로 피해자들을 보듬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빚은 참사임을 통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n번방)가해자 전원을 끝까지 추적하고 엄정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제 형사사법 공조 등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각지대를 없애고 처벌 수준을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n번방’에 참여한 ‘관전자’들도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죄 등 디지털 성범죄의 ‘공범’으로 보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이 텔레그램방에서 범행에 가담, 교사, 방조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 정도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범정부차원의 TF(태스크포스)를 꾸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며 “각 기관의 역량을 모아 강력하고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와 경찰 호송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징역형은 35.8% 불과…성착취 영상 평균 형량은 1년 2개월

 

여성단체, 누리꾼, 유명인 등 시민사회에서는 ‘n번방’ 가해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결국 n번방 사건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에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2018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인정된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의 48.9%가 집행유예, 14.4%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은 35.8%에 불과했다. 카메라 등을 이용한 성착취 영상 촬영의 경우 최종심 평균 형량이 1년 2개월 수준이었다.

 

특히 ‘n번방’ 전 운영자 와치맨으로 알려진 전모(38)씨의 경우 2018년 6월 음란물유포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1만 건이 넘는 음란물을 전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낮은 처벌수위에 범행이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국회에서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관련법 개정 및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범죄 특성을 무시하고 기존의 형법 조항을 적용하다 보니 국민의 법감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적용된다”며 “성 착취 카르텔을 끊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로 구매자와 소비자뿐 아니라 범죄 동조자 모두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