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유통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얼굴이 25일 드러난 가운데 그가 취재진 앞에서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 시장 등을 언급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범죄심리 전문가는 그의 이러한 발언이 “자신이 ‘손석희급’임을 강조하고 자신의 일베 추종자들을 고무시키는 말”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조씨가 한 ‘악마의 삶을 멈춰줘 고맙다’는 말은 책임 회피 차원이라고도 주장했다.
◆조주빈 “손석희, 윤장현 등에 사죄”
조씨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조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함에 따라 호송되기 전 포토라인에 선 것이다.
조씨는 목에 보호대를 차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경찰서를 나섰다. 정수리 부근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유치장에서 자해 소동을 벌이다 생긴 상처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손석희 (JTBC) 사장님,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 시장님 등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해 취재진을 의아하게 했다.
조씨는 이어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준비한 듯 말을 마무리했다. 그는 ‘성착취물 유포를 인정하나’, ‘갓갓(n번방의 또다른 운영자)을 아는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냐’ 등 취재진의 다른 질문엔 입을 열지 않고 바로 준비된 차량에 탑승해 검찰로 옮겨졌다.
그가 손석희 사장, 윤장현 전 시장 등을 언급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경찰에서도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파일러 “조주빈, 나는 ‘손석희급’이라 말하는 것”
범죄심리 전문가는 그의 발언이 고도로 계산된 것이라 분석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조씨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박사의 게임, 2라운드는 시작되었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그의 발언을 파헤쳤다.
배 프로파일러는 해당 영상에서 “(조씨의 발언이) 역시나 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조씨가) 맨 첫 번째로 손석희 사장을 언급한 건 ‘나는 손석희급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김웅 프리랜서 기자와 손석희 사장의 공갈 미수 사건 공판기일 증인 신문이 열릴 예정이다. 이 때문에 조씨가 자신과 관련된 기사들로 손 사장 재판 소식이 묻힐 것이라 예상해 미리 사과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배 프로파일러는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 시장을 언급한 건 ‘일베에 대한 지령’이라고 보았다. 조씨는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활동하며 호남 지역 모욕 발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배 프로파일러는 “(윤 전 광주시장에 대한 사과는) 일베 추종자들을 고무시키는 발언이다. 자신이 마치 순교자인 양 영웅심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조씨가 발언 중 마지막으로 언급한 인물이 김완 기자인지 김웅 기자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김웅 기자는 이날 손 사장과 공판이 예정돼있다. 한겨레신문 김완 기자는 ‘n번방’ 등을 취재 보도했다.
◆“모두에게 한 사과는 사과 아냐… ‘악마’ 언급 집중해야”
배 프로파일러는 조씨가 한 사과보다 ‘악마의 삶을 멈춰줘 고맙다’는 표현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조씨가 말한)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표현에 언론이 집중하고 있다”며 “하지만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은 다수에게 사과하는 건 안 하는 것과 똑같다. ‘모든’이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마의 삶 멈춰줬다’는 건 조씨가 ‘내가 한 게 아니다. 악마가 시켰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