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나흘 연속 1만명씩 증가하는 등 폭증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유학생과 교민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내 의료장비 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한 데다 주별로 휴교기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현지시간) 미 한인사회 등에 따르면 캔자스주에 이어 한인들이 많은 버지니아주가 사실상 8월 말 여름방학 때까지 휴교를 결정하는 등 대부분의 주들이 휴교기간을 늘리면서 한국 학생들의 ‘탈(脫)미국’이 이어지고 있다. 버지니아주 지역의 한 대학생은 “휴교 후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면서 굳이 상황이 악화하는 미국에 남을 이유가 없어 귀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귀국 예정이었던 주재원 및 공무원의 가족들도 귀국을 앞당기고 있다. 워싱턴의 한 주재원은 “학교가 가을에야 문을 연다고 해서 아이들을 생각해 가족만 4월에 먼저 귀국한다”고 밝혔다. 애틀랜타의 한 교민도 “학교, 학원, 여름캠프 등 모든 교육이 멈춘 상황이라서 아이들만 일시 귀국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환자가 7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의료장비 쟁탈전을 벌이거나 주요 정책에서 엇박자를 내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일리노이주의 의료장비 확보팀은 영업을 중단한 네일숍과 문신숍 등에 전화해 마스크와 장갑 등의 재고를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산소호흡기 확보를 위해 제조업체에 전화하면 어김없이 연방재난관리청(FEMA)이나 다른 주 정부가 경쟁자로 등장한다고 전했다. 워싱턴주는 산소호흡기 품절사태에 동물용 호흡기를 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절(4월 12일) 전까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를 풀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피력한 것과 관련해 뉴욕과 워싱턴, 캘리포니아주 등은 ‘부활절 시간표’를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증가세가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필수 직장 폐쇄’ 등의 조치를 완화할 경우 환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52분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환자는 6만8960명, 사망자는 1041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이탈리아에 고립된 교민 581명은 예정대로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26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전날 이탈리아 민간항공청(ENAC)에 한국 정부가 주선한 전세기 2대의 운항 허가를 요청해 당일 밤 승인을 받았다. 항공기 운항 허가가 24시간도 안 돼 내려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페루에서도 200여명의 우리 교민을 태운 아에로멕시코 전세기가 26일 출발해 28일 한국에 도착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라고 외교부가 밝혔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