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언급한 요르단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 지 한 달. 잘 지내냐고 다시 한 번 전화가 왔다. 요르단에도 현재 외출 금지령이 떨어진 상태인데,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강력하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중무장한 군인과 탱크 부대 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니, 완전 준전시 상태라고 요르단 친구가 알려주었다. 물론 이 친구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안에서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한다. 요르단 관광청에서는 9월이나 되어야 현지 분위기가 풀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고 한다. 약속이나 한 듯, 요르단 친구로부터 온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에는 한국어도 곧잘 하는 인도인 현지 가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뜸 ‘형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녕 못합니다’로 통화를 시작하더니, 4월 하순까지 이어지는 외출 금지령에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단다.
팬데믹 선언 이후, 세계 각국은 외출 금지를 포함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는 느낌이다. 문제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각자만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어떻게 알차게 보내느냐인데, SNS 동영상을 통해 스페인에서는 아파트 건물에서 서로 악기를 연주하며 화합의 장을 연출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24시간 내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 현실에 치여 각박하게 살아온 현대인으로서 갑자기 주어진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이용하느냐를 고민하는 것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슬기로운 자세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음악을 통해 문화를 읽는 가장 좋은 소재이자 방법, 바로 세계 각지의 음악을 들어보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이른바 월드뮤직이라는 용어로 1990년대 말부터 소개되었는데, 음악 형식이든 정서든,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서들이 음악 속에 담긴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월드뮤직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할 때마다, 글쓴이는 이렇게 정의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 본연의 정서인 희로애락에 호소하는 음악이다.” 지구 반대편 안데스 산맥의 장례 음악을 우리가 듣고서 농번기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이 신나서 함께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황우창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