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의 공판을 맡은 재판부가 교체된 데 대해 법조계에서 ‘사법권 침해’ 우려와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31일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국민감정에 따라 재판부가 교체된 건 초유의 일”이라며 “사법부 권위가 그만큼 실추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씨의 공범이자 ‘태평양’으로 불린 이모(16)군의 재판이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에서 형사22단독 박현숙 판사로 재배당된 데 대한 촌평이다.
진통 끝에 재판부가 교체됐지만, 성착취물의 제작·유통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갑자기 바뀔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164건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판결에서 실형을 받은 비율은 10%에 그쳤다. 반면 집행유예는 41%, 벌금형은 46%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을 범죄자들이 적극 활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성범죄 일반양형인자(양형에 반영되는 요소)에는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소극 가담 등이 감경 요소로 적시됐다.
‘n번방’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도 줄줄이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해 형량 낮추기에 나서고 있다. ‘태평양원정대’라는 성착취물 공유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이군 등 ‘박사방’ 공범 3명은 4월 공판을 앞두고 모두 반성문을 냈다.
대법원은 최근 법관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 강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새 기준 만들기에 착수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현실적인 양형기준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사법부 신뢰도 회복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