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재판부 교체… “사법권 침해” vs “변화 계기로”

“사법부 권위 실추” 자성 목소리 / 일각 “사법권 침해 가속화” 우려 / ‘태평양’ 10대 등 반성문 제출 / 형량 낮추기 나서… 판결 주목

‘n번방’ 사건의 공판을 맡은 재판부가 교체된 데 대해 법조계에서 ‘사법권 침해’ 우려와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31일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국민감정에 따라 재판부가 교체된 건 초유의 일”이라며 “사법부 권위가 그만큼 실추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씨의 공범이자 ‘태평양’으로 불린 이모(16)군의 재판이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에서 형사22단독 박현숙 판사로 재배당된 데 대한 촌평이다.



재판부 교체는 법원장은 물론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조차 간섭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오 부장판사가 과거 성범죄 공판에서 비교적 낮은 형량을 내렸다는 이유로 국민감정에 배치되자 재판부가 바뀌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법권 침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중당 당원들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만들어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판을 맡은 오덕식 판사의 교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통 끝에 재판부가 교체됐지만, 성착취물의 제작·유통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갑자기 바뀔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164건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판결에서 실형을 받은 비율은 10%에 그쳤다. 반면 집행유예는 41%, 벌금형은 46%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을 범죄자들이 적극 활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성범죄 일반양형인자(양형에 반영되는 요소)에는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소극 가담 등이 감경 요소로 적시됐다.

‘n번방’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도 줄줄이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해 형량 낮추기에 나서고 있다. ‘태평양원정대’라는 성착취물 공유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이군 등 ‘박사방’ 공범 3명은 4월 공판을 앞두고 모두 반성문을 냈다.

대법원은 최근 법관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 강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새 기준 만들기에 착수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현실적인 양형기준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사법부 신뢰도 회복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