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자주 나오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애주가가 있다. 청주(淸酒)를 주인공으로 ‘국선생전’이라는 가전체 소설까지 쓴 이규보다. 그는 계절과 연관되는 시도 자주 썼는데, 대표적으로 꽃샘추위를 소개한 ‘꽃샘바람’이다. 주요 구절로는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이것을 꽃샘바람이라 한다(花時多顚風 人道是妬花·화시다전풍 인도시투화)’, ‘꽃이 떨어져도 열매가 생기며 꽃을 대신한다(有實必代華·유실필대화)’ 등이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꽃잎이 떨어지더라도, 그 떨어진 꽃잎 자리에서 열매가 생긴다는 의미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에는 애주가답게 ‘술잔을 잡고 노래를 부르자(把杯且高歌·파배차고가)’라고 마무리를 한다. 그는 무슨 술을 마셨을까 궁금해진다. 그 시대에도 봄날에 즐길 수 있는 술이 있었을까?
최초의 경기체가인 한림별곡(翰林別曲)에 그 힌트가 나온다. 한림별곡은 한림의 유생들이 지은 노래인데, 당시 유명한 술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중 가장 지금의 계절과 가장 가까운 술이 있는데, 바로 봄에 피는 꽃 이름을 딴 이화주(梨花酒)다. 배 이(梨), 꽃 화(꽃)를 쓰지만 이 술은 배꽃을 넣는 술은 아니다. 새봄에 새하얀 배꽃이 필 무렵 빚어서 마시는 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빚어진 술이 배꽃처럼 새하얗기에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화주의 구체적인 레시피는 조선 건국 이후에 등장한다. 최초의 기록은 1459년 어의였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인 이 책은 2001년 청계천8가 고서점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이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최고(最古) 조리서는 수운잡방(需雲雜方)으로 알려졌으나, 우연한 발견으로 역전이 된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