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자랑에 열을 올리는 박물관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워낙에 유명한 미술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기는 했으나 자랑이 길어지면서 살짝 빈정이 상해 석굴암 본존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성을 자랑하는 우리의 불상을 내세운 나름의 ‘맞불’이었다. 그런데 이 이탈리아인의 반응은 ‘그런 게 있냐’는 것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불상인 데다 상대가 문화재 전문가이니 당연히 알겠거니 했던 내 착각이었다. 당시엔 ‘전문가라는 자가 석굴암 본존불을 몰라’ 싶었으나 나중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가 1121점이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세계유산까지 구체적으로 알기란 힘들다.
몇 년 전의 이 일을 이야기하는 하는 건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본의 세계유산이 있어서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는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관했다. 일본이 2015년 7월 세계유산에 등재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 조선 및 탄광’(이하 ‘근대산업시설’)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곳이다. 19세기 중반∼20세기 초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23개의 철강·조선·탄광시설로 구성된 근대산업시설에는 한국인, 중국인 등 수만명이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환경에서 노역을 한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야하타제철소, 나가사키조선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에는 눈감은 채 근대산업시설을 “서양의 산업혁명 물결을 수용하고 공업입국의 토대를 쌓은” 시설로만 선전하는 중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정보센터는 강제노역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증언, 급여봉투 등을 전시 중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