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들어오는 해를 바라보는 시간
‘창문을 이토록 열심히 바라보는 일이 있었나?’ 외출을 삼가고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팅은 전화로,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하루를 오롯이 집 안에서 보내는 요즘이다. 거실의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는 게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유일한 위로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대중에게는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로 널리 알려졌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이 초상화는 배경 없이 오직 소녀의 모습만 등장한다. 소녀는 매혹적으로 보는 이를 이끌지만,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여기서 비롯한 상상은 동명의 영화로 2003년에 태어나기도 했다.
페르메이르는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평생을 보냈다. 헤이그와 로테르담 중간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여기서 화상과 숙박업을 겸한 레이니어 얀스존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작품을 감정하고 판매하는 모습을 본 것은 어린 페르메이르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관찰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찍이 길드에 가입하여 자기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장인의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그는 가난해졌다. 다행히도 이른 시일 내에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하며 상황은 나아졌다. 부유한 처가 덕에 집 한구석 작업실로 사용하는 공간도 얻었다. 페르메이르는 이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펼쳤고 델프트와 그 근교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세심한 작업과정으로 일 년에 한두 점을 겨우 완성했지만 바로 판매로 이어지고는 했다. 화상 일을 겸하며 아내와 17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을 유지할 수 있었다.
40대에 들어서 그에게 어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1670년대 초 프랑스와의 전쟁이 일어나며 미술시장이 무너진 것이다. 장모 소유의 소작지도 수몰되어 소작료 역시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이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에 이상이 생겼고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볼네스는 “남편은 급속도로 쇠약해져서 앓아누운 지 하루 반나절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200년을 보냈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미술비평가 토레 뷔르거가 그의 작품세계를 발굴해냈다. 1866년 ‘페르메이르 연구’라는 글을 한 매체에 실었고 주목받았다. 당시 인기였던 사실주의와 연관해 페르메이르는 대대적으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지역에서 인정받았던 것을 넘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는 살아생전 다양한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얀 페르메이르, 야콥 판 데르메르, 얀 판 데르메르, 페르메이르 판 델프트 등이다. 작품마다 서명한 이름 역시 이렇게 다양해 진위 논란이 일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 없이 그의 작품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은 30여점이 전부다. 작품은 소수지만 그것이 품은 신비함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끌어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만든 창과 해가 있는 장면
페르메이르는 작가 생활 초기에 종교화 작업을 했다. 당시 예술의 본문으로 여겼던 이상적인 활동이었다. 네덜란드가 해상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작업에 변화가 생겼다. 귀족이나 교황이 아닌 사람들도 그림을 접하고 구매할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생활의 모습을 다루는 풍속화가 유행했고 페르메이르도 이러한 흐름을 따르기 시작했다.
페르메이르는 사람들의 일상을 숭고한 삶의 순간으로 포착해 화폭 위로 옮겼다. 정교하게 구성한 실내 정경을 햇빛이 비추는 그림을 자주 그렸다. 섬세하고 미묘한 붓질로 완성한 그림은 고요한 가운데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분위기는 보는 이를 붙잡아 전에 없던 감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어 사랑받는다.
‘물 주전자와 젊은 여인’(Yong Woman with a Water Pitcher·1662) 역시 부엌에서 일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왼편에 창문이 자리 잡고 그곳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여인은 온 몸으로 그 빛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손에 잡은 은주전자와 그것을 받친 은쟁반 역시 햇살에 빛난다.
페르메이르는 빛의 역할과 묘사에 큰 관심을 쏟아 그림을 완성했다. 빛이 물질에 닿아 반사하는 순간을 유심히 보았다. 그 결과 명확한 선을 그리는 대신 번지듯 엷은 표면을 칠해 윤곽을 잡았다. 물감 덩어리를 떨어뜨리고 굵은 붓질로 그 위를 지나가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성스러움을 부여했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사진기의 조상 격으로 빛을 작은 구멍으로 통과해 벽 또는 유리판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기구다. 하지만 ‘우유를 따르는 여인’ 등의 작품에서 원근법을 벗어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결국 그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큰 부분은 예술적 감수성에서 비롯한 시적인 표현이다.
#세상에 서서 해를 받아들이는 시간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언급할 만큼 사실적이다. 현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듯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며 친근감이나 편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보는 이를 숨죽이게 할 정도의 강력한 아우라를 풍긴다. 남다른 빛의 묘사로 온전히 빚어낸 결과로서의 아우라다. 관람자는 그녀의 순간을 방해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매일 거실 창문을 통해 해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매일도 어떤 분위기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결코 하찮거나 미미하지 않으며 생의 끝에는 숭고하게 남을 것들이다. 상황 속에 갇힌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매일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하지만 거실을 채우는 빛 속에서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생각하며 일상을 더 소중히 느껴야 할 때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