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경영난은 대면 접촉으로 매출이 일어나는 여행, 음식·숙박업, 항공업 등 서비스업에서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간 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항공사를 비롯 조선, 해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기계, 건설 등 기간산업은 그간 숱한 난관 속에서도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아 일자리를 유지하고 창출하면서 우리나라가 제조 강국, 무역 대국의 위상을 키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 업종의 선도 기업에서 문제가 생기면 1·2차 협력업체를 포함한 전후방 산업이 도미노 위기에 몰리면서 고용과 투자, 소비, 생산, 금융 등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생존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작년 말 기준으로 부실 등의 문제가 없었던 기업이라면 코로나 쇼크가 진정될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놓고 봐야 한다.
물론 무작정 돈을 퍼부을 수는 없다. 지원 조건으로 최대한의 고용 유지나 대주주·경영진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관세청이 전날(21일) 발표한 이달 1~20일 수출 실적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글로벌 '대봉쇄'에 직격탄을 맞아 전례 없는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아무리 우량 수출 기업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수출의 급멈춤이 언제 풀릴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당장 부도를 모면하고 고용과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무역금융 만기 연장 외에도 채권시장안정펀드, 저비용항공사 지원 등의 구제책을 내놨으나 대기업의 자금난에 숨통을 트기 위한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지원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경쟁국과 견주어 너무 소극적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매출 절벽으로 기업의 부실 속도가 빨라지고 3월엔 취업자가 20만명 가까이 감소해 실업대란이 현실화했다. 좌고우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실업자나 고용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재정 동원에도 과감해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고용 쇼크'가 현실화한 지난달 구직활동 계획이 없어서 '그냥 쉬었다'고 답한 사람이 237만명에 육박하며 통계 작성 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쉬었음' 인구는 전 연령층 가운데서도 사회 첫발을 내딛는 연령층인 20대에서 급증해 40만명을 처음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최근 늘어난 '쉬었음' 인구는 상당수가 '잠재적 실업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문제는 지난달 '쉬었음' 인구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20대 '쉬었음' 인구는 41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만9000명(35.8%) 늘었다. 20대에서 '쉬었음' 인구가 40만명을 넘어선 것도, 증가폭이 10만명을 넘어선 것도 모두 처음이다. 이어 40대(29.0%), 50대(16.4%), 60세 이상(11.2%)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다.
통상 '쉬었음' 인구는 정년퇴직, 은퇴 등으로 경제활동을 마무리하는 연령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코로나 고용 쇼크가 발생한 지난달에는 20대의 비중이 17.4%까지 커졌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 60세 이상의 비중은 42.1%에서 39.6%로 2.5%포인트 줄었지만, 20대의 비중은 15.2%에서 17.4%로 2.2%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도 최근 13개월 내 가장 많은 수준으로 늘어났다. 3월 구직단념자는 1년 전보다 4만4000명 늘어난 58만2000명으로, 2019년 2월(58만3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구직단념자는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고 최근 1년 이내 구직활동을 한 경험도 있으나 노동시장 상황 등 비자발적 이유로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구직단념자 증가는 취업이 그만큼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한다. 특히 구직단념자는 작년 9월부터 2월까지 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이어오다 7개월 만에 증가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쉬었음' 인구가 급증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과 함께 구직단념자도 증가로 전환한 것은 고용시장 예후가 나쁘다는 징후라며 우려했다.
고용 사정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최근 비경제활동인구로 옮겨온 이들이 경제활동인구로 한동안 넘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쉬었음’ 인구 급증…구직단념자도 증가세 전환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실업대란'을 막기 위해 내세운 '고용유지지원금'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현장과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22일 코로나19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기간이 3개월로 짧은데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기업만 지원할 수 있어 더 열악한 미가입 사업장들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업주들이 신청을 해야 하는 만큼 확실하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중소기업 고용유지지원금을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말 발표한 대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중소기업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휴업·휴직수당(임금 70%) 10%만 내면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달 말 시행령이 확정·공포되면 5월에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 예산 1004억원에서 추가경정예산으로 4000억원을 확보, 총 5004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기업은 16일까지 지난해 전체 신청건수(1514건)의 33배 수준인 5만 곳에 이른다.
그러나 현장과 전문가들은 실제 실업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사업주가 움직일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1년 이상 장기화되고 오는 겨울철 대유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고용위기도 길어질 수 있는 만큼 고용유지지원금 지원기간을 3개월 한시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고용노동브리프 '코로나19 대응 고용지원정책의 현황과 개선과제'를 통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위기는 우리나라에서 감염자 수가 감소한다고 해서 곧바로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이미 확대됐고, 회복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으나 올해 내로 고용위기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장 연구위원은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의 수급기준을 완화하고 지원액을 인상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당분간 더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관련 기업에 재정을 지원할 때 '고용유지' 조건을 필수적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고용유지지원금·일자리안정자금 수급기준 완화, 지원액 인상해야”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고용유지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난 2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2056만명)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67%(1380만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33%(680만명)는 미가입자다.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심각한 고용절벽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를 비롯해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기사,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 고용(특고) 노동자 등은 고용유지지원금에 해당사항이 없다는 점도 한계다.
현재 소득이 감소한 특고종사자·프리랜서는 월 최대 50만원을 지원하는 '지역고용대응 사업'만 수혜를 받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한도가 월 200만원 가까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도 지난 13일 노동시장 동향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고용보험 가입자보다는 일용직, 특고 등 미가입자와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용직·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더 큰 타격
문 대통령은 22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대응 방안과 관련해 "40조원 규모로 위기 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긴급히 조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긴급고용안정대책에 10조원을 별도로 투입해 고용 충격에 적극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지금은 위기의 시작 단계다. 기업 위기와 함께 고용 한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며 이 같은 비상대책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기간산업 지원을 위해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배경에 대해 "기간산업이 크게 위협받아 일시적 자금 지원이나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든 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산업 분야 중에서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 등 기간산업의 위기가 고용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해당 부문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을 넘어 출자나 지급보증 등 가능한 지원 방식을 총동원하겠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기간산업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간산업을 지키는 데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대신 지원을 받는 기업에 상응하는 의무도 부과할 것"이라며 고용 총량 유지, 자구 노력, 이익 공유 등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 안정이 전제돼야 기업 지원이 이뤄지며, 임직원 보수 및 주주배당 제한, 자사주 취득 금지 등 도덕적 해이를 막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며 "정상화의 이익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결정한 100조원 규모의 금융조치에 35조원을 더해 소상공인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기업들의 회사채 매입을 확대하고 신용도가 낮은 기업으로까지 유동성 지원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한 문 대통령은 긴급고용안정대책에 10조원을 별도 투입하기로 했다고 소개하면서 ▲ 고용유지 지원을 통한 실업 대란 차단 ▲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획기적 축소 ▲ 정부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文,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극복 위해선 ‘일자리 지키기’가 핵심
이른바 '고용안정 정책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지키기'가 핵심이라는 문 대통령의 인식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고용유지 지원과 관련,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은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휴직수당의 90%까지 보전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속적으로 확대 지원하면서 무급휴직 신속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각지대였던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영세사업자 등 93만명에 대해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3개월간 50만원씩 지급' 방침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 "정부가 나서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연기됐던 공공부문 채용 절차도 하루빨리 정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