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가족
5월은 1년 중 유독 행사가 많은 달이다. 사실 매달 행사는 비슷한 숫자로 존재한다. 하지만 직접 참여하는 날들이 있어 그렇게 느껴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몸을 움직여 가족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외식을 하고 선물과 카네이션을 건네는 패턴을 반복하며 매해 보내는 날. 그러나 그렇게 한결같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되새길 감사한 기회다.
◆문성식의 시선이 보는 세상의 모습
문성식은 초기에 연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다. 종이 또는 천 위에 선을 남기거나 수많은 선을 겹쳐 면을 만드는 드로잉이었다. 선으로 그리는 드로잉이 서양 미술사에서 과정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선이라는 요소가 동양화에서 정서를 전달해내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갔다. 시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존재를 남기기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그려낸 것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기억 속의 일이었다. 시골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이 자주 그렸는데 정겨움을 그리려던 것은 아니다. 김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는 가장 보통의 감정과 순간들이 모두 존재하는 장면이었다. 살아가며 경험하는 면면을 시선만큼 섬세한 손길로 포착하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자기 작품세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세상엔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만큼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빛은 그것들의 모습을 만들며 그것들은 내 안에서 풍경이 된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절실함과 동시에 무심하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일부이며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내 그림이 된 것은 그런 것들이다.”
‘청춘을 돌려다오’(2010)는 시골 잔칫집을 그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고속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화면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노인의 모습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 슬픔과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영화에서 김혜자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하고 그것을 잊고자 춤을 췄듯이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기쁨 속에서 슬픔, 아름다움 속에서 추함의 시간을 보는 문성식의 시선이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면면을 그대로 볼 줄 아는 시선. 이렇게 문성식의 작품은 우리가 무심히 지난 풍경에 감각과 감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단순한 기억으로 남을 법한 장면에도 의미가 내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 그리고 끌림
문성식은 최근 유화 드로잉과 채색 드로잉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드로잉과 회화를 하나로 융합해 자기만의 작업방식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를 비롯해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캔버스에 칠을 하고 젯소를 두껍게 발랐다. 그것을 긁어내어 형상을 만들고 수채물감 과슈로 칠했다. 그렇게 벽화처럼 표면과 질감이 느껴지는 두꺼운 드로잉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끌림에 관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초기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랜 시간 인간사와 주변 만물을 바라보자 존재의 사이에 근원적인 끌림이 보였다. 이 끌림을 다큐멘터리 같은 풍경화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냥 삶’(2017-2019)은 사람, 곤충이 꽃에 이끌리는 당김에 관심을 가지고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집 앞 작은 땅에 장미를 심어 3년 정도 키웠다. 그동안 장미가 보여주는 사이클을 살펴보는 데 빠졌다. 장미는 번식을 위해 꽃잎을 활짝 피고 나비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 사이에 거미는 줄을 치고 은거했다. 장미는 이름을 듣고 떠올리는 단순히 봄에 피는 예쁜 꽃이 아니었다. 그것의 생로병사는 욕망의 반영 같았고 사람이 사는 세계의 축소판 같았다.
‘끌림’(2019)은 1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매스컴을 통해 접한 이산가족의 이별 장면을 그렸다. 그중 특히 애절하게 느껴진 손의 모습에 집중하여 화면에 담았다. 예정된 이별을 앞둔 절박함과 생명에 내재하는 강한 끌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만남’(2018)에서도 서로 얼굴을 맞댄 채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지나도 가족 사이에는 서로를 알아챌 수 있는 본능과 떼어낼 수 없는 끈끈함이 분명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냥 우리 삶의 섭리와 같은 관계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꽃에 나비가 날아들 듯 서로를 찾으며 살아갈 관계.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할 관계.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