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재택근무 만족도 UP… ‘홈코노미’ 시대가 열린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⑤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끝> / 기업 근무형태 다양화 추진 / 코로나 방역 대책 일환 시행했지만 / 직원 “집중 잘돼” 생산성 향상 효과 / 소비 이어 생산도 ‘언택트’로 전환 / 국제노동기구 ‘현장 노동 종말’ 예고 / 기업, 직원들 근태관리 어려움 겪어 / 동선 추적 앱 개발했다 논란 일기도 / 협업·소통 줄어 창의성 저하도 숙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NHN은 재택근무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수요 오피스’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매주 수요일 직원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NHN은 여느 기업처럼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재택근무에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자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일종의 유연 근무 방식을 내놓은 것이다. NHN은 “급변하는 IT 업계 환경에서 NHN에 가장 잘 맞는 근무 방식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시도”라고 이번 제도 도입을 설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은 오는 7월 재택근무 종료를 앞두고 일부 직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속속 재개되는 상황에서 근무형태를 다양화하기 위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가정 내 근무가 가능한 직원은 이를 계속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기업들이 새로운 근무 방식으로 ‘비대면 근무’를 눈여겨보고 있다. 뜻하지 않게 시행한 재택근무가 업무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 전략으로 떠오른 것이다. 기존의 언택트(Untact·비대면) 시장이 ‘소비’를 중심으로 판을 키웠다면 ‘생산’마저도 언택트로 이뤄지는 진정한 의미의 ‘홈코노미’(Homeconomy)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근무 확산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보고서에서 ‘현장 노동의 종말’을 예고했다. ‘직장 내 감염’과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제조업, 숙박업, 소매업 등을 중심으로 비대면 근무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출퇴근을 필수로 여겼던 산업 영역에서도 근무형태 변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기업들이 비대면 근무를 고려하는 현실적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장기화에 따른 방역 대책의 일환이다. 국내에서는 일부 기업이 확진자 발생에 직장폐쇄를 겪으면서 촉발했다. 두번째는 비대면 근무를 경험하면서 검증된 업무효율성이다. 이런 배경으로 태동한 단적인 사례가 콜센터의 근무 형태 변화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 콜센터의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사무환경이 감염병을 막는 데 취약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간 콜센터는 고객의 개인정보 취급 등을 이유로 출퇴근 방식을 고수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재택근무도 가능해졌다. 이미 사회 기반시설로 자리 잡은 통신망과 업무환경 등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비대면 근무에 대한 만족도는 높게 나타나고 있다. IBM 기업가치연구소가 지난달 미국 내 직장인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가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이어가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꼽은 재택근무의 장점은 공중 보건과 생산성 향상, 업무 집중, 비용 절감 등이다. 응답자의 70%는 ‘정기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근무방식이 바뀌자 기업문화도 달라져

비대면 근무는 경직된 기업문화를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다. 팬데믹 이전의 국내 노동시장은 주 52시간제 도입을 기점으로 ‘선택근로제’, ‘탄력근로제’ 등 근로시간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기업들은 정해진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위한 장치들을 도입하면서도 ‘근무장소’의 유연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소극적이었다. 출근을 해야만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깊게 뿌리 박혀 있던 탓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비대면 근무는 기업 전반의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근무 시간과 같이 드러나는 ‘정성평가’보다 업무성과를 기반으로 한 ‘정량평가’에 더 무게가 실릴 가능성도 있다. 직장인 박모(31)씨는 “주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는 회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 눈치 보일 정도로 시간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며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대한 압박 없이 개인의 성과주의가 강화된 분위기라 효율적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겪게 되는 업무 외 영역의 스트레스도 크게 줄었다는 반응이다. ‘언컨택트’의 저자이자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작가는 비대면이 ‘편리한 단절’을 이끈다고 분석했다.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피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는 밀레니얼 전후의 세대인 ‘Z’세대나 ‘M’세대의 소통방식과 맥을 같이한다. 비대면은 단순히 감염병 사태에서 촉발된 사회 변화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사회 흐름인 셈이다. 직장인 공모(30)씨는 “매일 출퇴근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오로지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며 “재택근무를 하면서부터 삶의 질이 개선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근태관리 어려움, 사생활 침해 논란도

비대면 근무에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도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대한 근태관리가 기업들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직장인 김모씨는 “재택근무를 할 때면 팀장의 전화나 메시지가 출근했을 때보다 자주 온다”며 “근무 중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사내메일함을 들락거리거나 기록을 남기는 등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미국에서는 일부 기업이 코로나19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직원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앱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직원 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지만 사생활 침해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회사가 근로자의 동의를 받은 경우 재택근무에 따른 위치를 추적할 수 있지만, 일부 회사에선 업무용 PC나 스마트폰의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하도록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대면 근무가 직원 간 협업과 소통을 줄어들게 해 효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이유로 재택근무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던 IBM은 재택근무 제도를 폐지했다. 포털사이트 야후도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며 2012년 재택근무 폐지를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근무 방식을 둘러싼 고민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단순히 근무시간을 채우는 방식의 근태관리가 아닌, 성과로 판단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