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장치 빠진 권역검사제… ‘향검 비리’ 키울라 [현장메모]

“(지역 유착 문제가 있어) 검사 지방 장기근속은 제한적으로 허용하겠습니다.”

2018년 11월 검사 인사규정 재개정안 발표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의 말이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같은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상반된 내용의 인사제도 개혁 권고안이 나왔다. 법무부 법무·검찰 개혁위원회가 지방 소재 지검 근무를 희망하는 검사에 대해 기간 제한 없이 지검 관내 검찰청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게끔 하고, 지역에서 평생 근무할 수 있도록 ‘권역검사제’를 제안한 것이다. 1년여 만에 검찰의 지역 유착 문제가 해결됐다는 전제 없이는 언뜻 이해가 어려운 결정이다.



보통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법관을 ‘향판’, 검사를 ‘향검’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토호세력과 결탁해 수사와 재판 과정에 개입해온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이었다. 부친이 목포지방법원장이었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청윤 사회부 기자

울산 고래고기 환부 사건 등 몇몇 향검 논란이 제기돼 왔지만 향판 문제와 달리 비교적 덜 부각된 것은 검사가 판사보다 청렴해서가 아니다. 법원보다 검찰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 전보인사를 실시한 덕분이다. 부장검사 이상은 매년, 평검사는 2년마다 정기 인사 대상에 포함돼 왔다. 토호세력과 유착하려고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셈이다.

권역검사제가 시행된 미래를 엿보려면 같은 검찰청에서 함께 수사하는 검찰 수사관들을 살펴보면 된다. 수사관들은 검사와 달리 수십 년간 한곳에 근무하며 지역사회에 파고든 경우가 다반사다.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 수뢰 사건의 공여자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경남의 한 군납업자에게서 “수사를 잘 좀 부탁드린다”며 25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검찰 수사관이 기소된 게 불과 4개월 전인 올해 1월이다. 이 수사관은 창원지검과 관할 검찰청에서 수사관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개혁위는 권역검사제 등으로 인한 향검 문제를 우려하자 공수처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조건이 변했다고 대답했다. 전국 검사 인사 체계가 변화한 상황에서, 검사뿐이 아닌 모든 고위공직자를 수사해야 하는 수십 명 규모의 공수처가 향검 비리를 사전에 찾아내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숙하다는 시민의식은 뭘 의미하는지 더욱 모호하다. 일단 제도가 바뀌면 다시 돌아가는 길은 요원하다. 지역 카르텔이 공고해지면 피해는 선량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법무부와 개혁위는 지방의 상황을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고, 향검 문제에 대한 견제장치를 시급하게 마련하길 바란다.

 

김청윤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