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5개월밖에 안 된 딸이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거짓’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애초 성폭행(추행) 사실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해 초등학생은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강정수 대통령디지털소통센터장은 ‘저희 25개월 딸이 초등학생 5학년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53만여 동의를 얻은 청원이 ‘허위사실’임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강 센터장은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병원 진료내역도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청원은 미비한 제도를 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와 슬픔을 나누며,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과 질책뿐 아니라 정책 제안의 기능도 하고 있다”라며 “국민 여러분의 참여 덕분이다. 국민청원의 신뢰를 함께 지켜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해당 청원 내용의 사실 여부를 조사한 결과 허위로 드러나자 청원인 30대 A씨를 형사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같은 날 밝히기도 했다.
문제의 청원글은 지난 3월2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됐다. 경기 평택시에 거주하는 두 딸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평소 같은 아파트에 살며 교류하던 이웃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지난 17일 집에 놀러 와 딸과 놀아주다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면서 “다음날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보니 딸의 ○○가 부어있고 아프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딸이 ‘오빠가 때찌했어’라고 말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상처가 생겨 추후 정밀검사를 받아보자는 소견을 받았다”면서 “전날 자기 전 학생의 휴대전화에서 성적인 문구의 문자 알람이 와 있는 것도 봤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이 학생 부모의 대처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공분을 일으켰다.
A씨는 “학생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자기 아들은 잘못이 없고 우리 딸이 문제라며 증거도 없는데 왜 그러냐는 식으로 나왔다”면서 학생과 부모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임이 판명났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해당 글이 게시된 당일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아이디를 추적해 신원을 특정한 경찰은 A씨가 평택에 거주하고 (글을 올릴 당시) 25개월 된 딸이 있는 사실은 확인했다. 그러나 가해 초등학생과 부모가 거주한다는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또한 A씨 딸이 성폭력 관련해 산부인과 등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A씨로부터 허위 주장이라는 진술을 받아낸 경찰은 그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처음 경찰 면담에서는 딸이 피해를 입은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가 진행되자 모두 거짓임을 실토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A씨가 왜 거짓 청원글을 올렸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해당 내용으로 국민청원을 올린 뒤 화제가 되고 동의 수도 증가하자 적잖은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청와대는 답변 기준인 20만 동의를 넘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관련 청원 3건에 대해서도 답변을 내놓았다.
강 센터장은 “오늘 너 킬(Kill)한다”라며 또래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인천 중학생 고발 청원에 대해서는 “가해 학생들이 지난달 구속기소 돼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정부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의 심각성을 엄중히 인식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엄정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개별 판결의 양형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초등생 성폭행한 고등학생 엄중 처벌’ 청원에 관해서도 “개별 판결의 양형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어 답변 드리기 어렵다”고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강 센터장은 ‘어린이집 원장 성폭행 고발’ 청원에 대해선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서 “추후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청와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