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0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20대 국회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세무사법 등 다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 2018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 법안이다.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되, 세무사법에 명시된 업무범위 8가지 중 핵심 업무인 회계장부작성과 성실신고 확인 등 2가지를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헌재는 당초 2019년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국회가 이 기한을 넘기면서 세무사 등록과 관련한 해당 조항은 올해 1월 1일부터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세무사 업무를 보려면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기획재정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지난해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700여명이 개업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위헌 소지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 법안이 오르지도 못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자동 폐기될 상황이다. 입법 기관인 국회가 되레 입법 공백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형국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접수된 전체 법안 2만4130건 가운데 계류 중인 법안은 1만5311건에 달한다. 접수된 법안의 63.5%가 처리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날 본회의에서 141건이 처리됐지만 1만5000건 이상의 법안이 오는 29일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폐기되는 법안 중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안’이 포함됐다. 이해충돌방지법안은 공직자의 직무 수행 과정에서 이해관계 개입을 막기 위한 법안으로 정부 제정안과 의원 발의안이 함께 계류 중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말 발표한 12·16 대책의 후속 입법인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2020년 납부분부터 강화된 종부세를 적용하려던 정부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게을리하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 이른바 ‘구하라법’도 폐기된다.
이날 오후 4시를 넘겨 열린 본회의에서는 141건의 안건이 2시간 40분 만에 쾌속처리됐다. 거의 1분에 안건 하나가 처리된 셈이다.
본회의에 상정할 안건을 의결해야 하는 법사위 회의가 길어지면서 본회의 개의가 늦어지는 등 벼락치기 밀어내기 관행은 마지막까지 반복됐다.
회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리를 비우는 의원이 많아지면서 첫 안건 처리 당시 221명이었던 재석의원이 110명대로 떨어져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재투표를 하는 상황이 2번이나 벌어졌다.
일부 의원은 표결 도중 연단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서로 찍어주는 등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몇번이고 고성으로 가득 찼던 본회의장이지만 이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년 의정활동을 마무리하는 통합당 정병국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부디 21대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회의 권위를 세우고 의원의 품격을 되찾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발언, 여야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산회를 선포하자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의원들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이날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법률개정안’(과거사법) 표결 과정을 지켜봤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2년 넘게 국회의사당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인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51)씨는 이날 통합당 김무성 의원을 향해 큰절을 했다. 김 의원이 적극적 중재에 나선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최씨는 행정안전위 간사로 과거사법을 논의했던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을 보고도 “형님”이라고 외치며 끌어안았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