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옷·가방 ‘업사이클링’… 철저한 분리배출이 첫 걸음 [연중기획 -지구의 미래]

무색페트병 분리 수거 시범사업 4개월째 / 서울·천안 등 6개 지자체 시행 / 플라스틱 쓰레기 급증… 물질 재활용 22%뿐 / 무색페트병 원사로 가공… 친환경 제품 재탄생 / 오염물질 많이 섞여있어 선별작업 어려움 /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라 / 6월 상품 출시… 2021년 분리수거도 확대 / 이물질 최소화 위해 인력·장비 지원 절실 / 올바르게 분리 배출하는 시민의식 필요
‘띠링.’ 30대 직장인인 A씨의 저녁은 배달주문으로 시작된다. 오후 7시40분, 휴대전화로 주문한 배달음식이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떴다. 배달산업 활성화로 이제는 삼겹살도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단단히 묶여 있는 비닐봉투를 뜯어봤더니 갓 구운 삼겹살과 각종 반찬이 플라스틱통에 잘 포장돼 있었다. 삼겹살을 다 먹어갈 때쯤 휴대전화에 또다시 알림이 울린다. 오전에 온라인으로 장을 봐 둔 물건들이 집으로 배송됐다는 것이다. 집 앞에 놓인 박스를 열고 생수, 샐러드, 계란, 두부, 새로 산 칫솔 등을 꺼내 포장을 뜯어냈다. 오늘 하루 사이 버려야 할 플라스틱과 종이박스 등 일회용 포장재들이 한가득 현관에 쌓였다.

 

배달·배송산업의 발달로 손가락 움직임 하나만으로 모든 물건을 현관 앞에서 받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왔지만, 덩달아 일회용 폐기물 급증이라는 또 다른 숙제가 등장했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은 가볍고 편리해서 널리 사용되지만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아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바다에 사는 해양생물의 몸에 상당한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돼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2018년에는 공동주택 단지에서는 폐비닐과 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했고, ‘의성 쓰레기 산’ 등 전국에 방치된 불법 폐기물이 120만t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버려진 쓰레기들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정부는 ‘페트병 재활용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 2월부터 무색 페트병을 일반 플라스틱과 별도로 분리 배출하는 시범사업을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시범사업 4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철저한 분리수거가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5일 천안시 재활용선별장에서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에서 수거한 무색 폐페트병이 암롤차에서 쏟아지고 있다.

◆“불순물 없는 페트병 플레이크만 원사로 만들 수 있어”…2022년까지 10만t 목표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일평균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은 2016년 1만9582t에서 2017년 2만1812t, 2018년 2만2528t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은 매립, 소각, 재활용 3가지 형태로 처리되는데, 국내에서 매립이나 소각이 아닌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8년 기준 일평균 1만4830t으로 66%를 차지한다. 66%라는 수치로만 보면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물질 재활용’뿐만 아니라 ‘에너지 회수’ 개념이 함께 포함돼 있다.

물질 재활용은 우리가 사전적으로 이해하듯, 물질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고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페트병이나 폴리스티렌 등이 해당하며 섬유나 플라스틱 용기, 건축자재 등으로 사용된다. 에너지 회수는 말 그대로 플라스틱을 태워 제철소나 열병합발전소, 시멘트 보조연료 등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정부는 현재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 소각, 매립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재활용 방법별 통계는 만들고 있지 않다. 즉, 태워서 연료로 활용하는지, 플라스틱 형태를 살려 원단, 솜, 용기 등으로 활용되는지 실질적인 재활용 수준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충남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재활용률 62% 가운데 물질 재활용은 22.7%이고, 나머지는 39.3%는 에너지 회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이 많은 생활계 폐기물의 경우 물질 재활용률이 13%로 저조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수준을 높이고자 서울과 천안, 제주도 등 6개 지자체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등을 중심으로 무색 폐페트병을 별도로 배출하도록 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무색 페트병은 의류용 섬유로 가공해 옷이나 가방, 카펫, 플라스틱 용기 등으로 다시 만들 수 있어 재활용도가 매우 높다.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에서 페트병을 선별해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세척한 후 이를 잘게 파쇄해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조각인 ‘플레이크’ 형태로 만든다. 이 플레이크를 다시 가공하면 의류를 만드는 원사로 변신한다.

옷을 만드는 장섬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플라스틱 용기나 불순물 등이 섞여서는 안 된다. 그간 국내에서는 고품질의 페트병 수집이 어려워 최근까지도 국내에서 수집된 페트병으로 장섬유를 만들지 못했다. 대부분 일본과 대만 등에서 연간 9만t에 가까운 폐페트병을 수입해 원사를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정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국내에서 수집한 페트병으로 원사를 생산해 친환경 가방이나 의류 등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환경부와 생수 업체인 스파클과 장섬유 생산 업체인 티케이케미칼이 협약을 맺고 의류 제작을 진행 중이다. 환경의 날인 다음달 5일을 목표로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페트병 분리배출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인력 및 장비 지원과 더불어 철저한 시민의식이 재활용에 필수”

현장에서는 시범사업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체계와 더불어 분리수거에 민감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지난 15일 찾아간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재활용선별장에서는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에서 분리 배출돼 수집된 폐페트병들이 암롤차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천안시는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50t 정도의 플레이크가 생산됐다. 천안시는 환경부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 플레이크를 활용해 신발, 가방, 플라스틱 용기 등으로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의류를 만들기 위한 플레이크를 생산하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았다. 현재 선별처리장의 시스템과 인력만으로는 불순물이 적은 순수 플레이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순물이 0.001%라도 남아있을 경우 플레이크를 원사로 생산할 수 없다.

재활용선별장에서는 일주일에 2번 무색 페트병 폐기물을 선별하는 것 외에 고철류, 병류, 종이류, 비닐류 등 다양한 폐기물이 한곳에 모인다. 이런 다양한 폐기물에는 액체류, 기름류, 음식물 심지어는 동물 사체까지 다양한 오염물질들이 섞여서 들어오기 때문에 분리되는 시설에는 기름때 등의 찌꺼기가 붙어있다. 또 수집과정에서도 기존 폐기물을 수집하는 암롤차에 분리된 페트병을 실어오기 때문에 이물질이 묻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순수한 폐페트병을 별도로 배출하더라도 기존 선별장에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오염된다.

선별장 관계자는 “플레이크를 생산하는 업체에 따르면 당분이나 기름, 소금, 착색된 페트병 등 이물질이 묻은 페트병은 원사 생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수집·운반에 어려움을 겪었다. 환경부에서 암롤차 대신 별도의 트럭을 사용하라고 하는데 암롤차 1대와 같은 양을 싣기 위해서는 트럭 3대가 필요하다”며 “기존 처리 시설에서는 이물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력과 장비, 비용, 보관시설 등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애초 별도의 수거시설을 지정하는 등 정부에서 이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과도하게 플레이크를 세척할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남아있는 잔류 세제가 장섬유를 쉽게 끊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배출되는 원물이 깨끗해야 하는 이유다. 장섬유 생산 업체 관계자는 “장섬유는 머리카락 200분의 1 수준 굵기의 가느다란 실인데, 이 실이 몇만 미터 이상 끊어지지 않고 생산돼야 옷을 만들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원물, 즉 수집되는 폐페트병의 상태가 양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천안시 서북구에 위치한 재활용 선별장에서 직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 중인 폐페트병에서 이물질 등을 분리하고 있다.

시범사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분리배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여전히 큰 문제였다. 이날 기자가 선별장에 도착한 시범사업용 페트병 봉투를 보자 유색 페트병부터 라벨이 뜯어지지 않았거나 페트병이 아닌 플라스틱을 배출한 경우, 세척하지 않고 다른 음료나 이물질이 담겨 있는 페트병이 적지 않게 눈에 보였다. 자동화 기계를 통해 이물질 등을 분리해내고도 12명의 선별장 직원들이 또다시 2차, 3차 선별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최종 압축 과정에서 페트병이 아닌 것들이 간간이 섞여 있었다.

천안시 관계자는 “재활용제품을 분리 배출하는 핵심 4대 원칙은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이다”며 “초기 배출과정부터 시민들이 이 같은 원칙을 잘 지켜줘야만 재활용률도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시민의식을 발휘해 올바른 분리배출을 실천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천안=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